시각장애인의 새로운 직업, 암 검진 촉진 전문가
다국적 제약기업 ‘베링거인겔하임’과 사회혁신기업가 네트워크 ‘아쇼카’가 지원하는 ‘Making More Health(MMH)’ 프로젝트가 있다. MMH는 한 국가나 지역 사회 내에서 건강 및 보건의료 증진을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사회혁신기업가를 발굴하여, 이들 활동이 사회적 혁신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본 프로젝트를 통해 시각장애인의 새로운 직업을 개척한 사례가 있다. 다음은 동아일보(7월 22일자)에 게재된 기사 내용이다.
시각장애인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경제 활동에는 제약이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에 따르면 경제 활동이 가능한 국내 15세 이상 시각장애인 25만 명 중 경제활동 인구는 절반이 되지 않는 45.7%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법으로 시각장애인만 자격증을 취득하게 정해놓은 안마사 정도가 유일한 능력 발휘 분야다. 그 외 분야에서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물리적 장벽이 있어 취업이 쉽지 않다. 이러한 가운데 시각장애인만의 뛰어난 능력을 헬스케어 영역에 접목시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 독일의 헬스케어 혁신 사례가 눈에 띈다.
한국 사회와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유방암은 여성건강의 큰 문제다. 한 해 독일에서만 5만8000여 건의 유방암 환자가 발생하고, 1만8000여 명이 사망하는 심각한 질환. 하지만 2005년부터 유방암 X선 검진 건강보험 적용 연령을 40세 이상에서 50세 이상으로 상향하는 등 제도적 뒷받침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이렇듯 높은 검진 비용은 50세 미만 여성의 유방암 검진 기피로 이어져 유방암 조기 발견을 어렵게 하고 있다.
독일의 산부인과 의사이자 사회혁신기업가인 프랑크 호프만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반인보다 촉각이 뛰어난 여성 시각장애인이 유방암을 촉진하면 더 적은 비용으로 유방암을 조기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2006년 독일 뒤스부르크에서 비의료 전문가인 시각장애인의 촉각을 활용해 여성 유방암 검진자로서 교육, 병원 현장의 취업 기회 제공까지 연결해주는 ‘디스커버링 핸즈(Discovering Hands)’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여성 시각장애인은 9개월간 표준화된 유방암 촉진 방법과 의사소통 기술을 배운다.
보통 일반 여성이 스스로 감지하거나 의사가 촉진해 발견하는 종양의 크기는 1~2cm 정도. 반면 훈련된 여성 시각장애인은 이보다 훨씬 작은 0.6~0.8cm의 작은 종양도 발견할 수 있었다. 평균적으로 의사의 촉진 시간이 3분 정도지만 시각장애인 촉진 전문가들은 30분 이상 환자와 소통하며 정밀히 촉진을 시행한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진행되는 검진 비용은 기존 X선 검진료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호프만은 검진 방법을 표준화하고,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촉진용 점자 진단검사 매핑 시스템도 구축했다. 점자가 새겨진 테이프를 이용해 환자의 가슴을 구역으로 나누면, 시각장애인 전문가들은 이를 격자형 좌표와 같이 인식하게 되어 종양을 발견한 구역의 번호를 컴퓨터에 입력, 의사에게 알려주는 방식이다. 이렇게 철저한 교육을 시행하고 시스템을 체계화한 결과, 시각장애인 촉진 전문가는 정상시력을 보유한 일반 의사에 비해 두 배나 많은 종양을 감지할 수 있었다.
디스커버링 핸즈의 프로그램을 통해 현재 10여 명의 여성 시각장애인들이 훈련받아 촉진 전문가로서 직업을 갖게 됐으며, 독일 여성들은 더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유방암을 조기 발견할 수 있게 됐다.
여성 시각장애인의 뛰어난 촉각을 통해 여성 건강 문제와 여성 장애인 고용 확대라는 두 영역을 연결시켜 혁신적인 보건의료 시스템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이에 아일랜드, 프랑스, 덴마크, 영국, 오스트리아 등에서도 이 프로그램 보급을 논의 중이며, 전립샘검사 등 다른 분야로의 응용 및 발전 가능성도 모색하고 있다.
이상 기사에서 확인된 시각장애인의 암 검진 촉진은 획기적인 아이디어로써 시각장애인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여성들에게는 더 저렴한 비용(30분간의 검진에 한화 5만원 정도이며, 본래는 4배 비싼 20만원 정도의 유방암 진단 비용이 듦)으로 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빠른 시일내에 이러한 시각장애인 촉진가를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쇼카 한국’ 관계자는 “우리나라 법제상, 의료기관에서 시각장애인이 촉진하는 ‘의료 행위’는 ‘의료법’에 저촉되므로 적용하기 힘들다”고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 촉진전문가 자격제도 신설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조성해갈 필요나 명분은 충분하다. 독일의 사례로 입증되었듯이, 실효성 있는 암 조기진단법을 추가함으로써 국민건강에 이바지하여 의료법의 입법취지에 부합될 뿐 아니라, 여전히 암 확진은 의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니만큼 의료행위에 대한 혼란의 여지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2015. 8. 15 제935호)
'의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른 관점에서 한국 양방 보기 (0) | 2017.04.11 |
---|---|
BMI한계 (0) | 2017.03.10 |
[스크랩] 혼자 읽기 아까운 좋은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0) | 2016.04.03 |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 [책] (0) | 2015.08.06 |
마음혹은 신체의 스트레스가 대동맥 박리로... (0) | 2015.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