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가가 지금의 순간부터 의심은 많은 존재들을 떠나지 않았어. 우주에 초월할 자 없는 존재로서 하느님이 사람을 지은 게 정말일까? 여러 존재들이 아닌, 바로 하느님과 사람이 대등하다는 하느님의 주장에 확증이 있나?
" 그는 나의 모습이자 형상이야. 난 그에게 전부 다 주었고 미래에 생각해낸 것도 줄거야" 라고 하느님이 스스로 선언했으니까.
하느님은 자신의 작품인 사람이 자기와 닮길 바랐어.
자 이제 현대 인류를 보자고.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에 대해 말하지. 조물주에 대한 자기들의 사랑이 강렬하다고 해. 하지만 이전 자기 자산에 대한 거짓말이야.
그를 보지 않고 느끼지 않고 이해하지 않고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거든.
사람들이 " 나는 하느님을 믿어" 라고 말하지 그런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믿는다는 거야? 하느님이 존재하심을 믿는 거야? 그런데 이건 쾌나 원시 수준의 의식인 걸
" 하느님이 존재하심을 난 믿어" 라고 말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느끼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다만 그의 존재를 믿는 거라고 사실상 인정하는 거야
하느님을 믿는다는 의미가 전능하시면 선하시며 사랑하시는 부모인 하느님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이들이 하느님을 위해 하는 게 말 이외에 무엇이 있지?
하느님의 작품을 부수고 자기 아버지가 지으신 세상에서 멀리 수도원의 돌담 뒤로 숨거든. 수천의 성스러운 경전을 생각해내고 써냈지. 어디나 다 똑같아
성경은 말하지, 하느님을 숭배해야 한다고, 절을 하긴 하는데 누구한테 하는 건지는 몰라.
이런 아수라장을 바라보는 하느님의 심정을 상상해보게. 애쓴다면 그 심저을 헤어리 수 있어.
하느님은 사람의 모든 감정을 지니고 계셔. 다만 그 감정이 더 강하고 통렬하며 더 깨끗할 뿐이야.
하느님이 자신의 자녀들을 주시하고 있는데, 자녀들이 하는 일이란 '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다만 우리에게 더 많은 은총을 베푸세요. 우리는 당신의 노예입니다.
우리는 무기력하고 철없고 멍청합니다.
우리를 도와주세요 하느님'하고 애원하는 것뿐이야.
자기 자식들의 무기력한 탄식보다 부모에게 더 큰 고통이 무엇일까? 이런 연유에서 우주 존재들한테서는 하느님 작품의 완벽함에 대해 의심이 일어난 거야.
그런데 누가 언제 어떻게 사람을 그토로고 어리석게 만들었을까?
사람을 어리석게 하는 건 생가의 힘이 그와 동등한 자, 즉 사삼 스스로일 뿐이야.
신관들이 사람을 퇴보의 길로 몰았지. 이들은 자기들이 온 인류을 지배할 수 있음을 하느님께 증명해 보이려 했어.하느님은 결코 언제 누구와든 대화하지 않고 인간의 운명에 개입하지 않으며 모든 운명은 스스로가 선택하는 길에 의해 정해진다고 이들은 알고 있었어.
하느님께서 신관들과 대화하지 않고 새 기적을 행하시지도 않았던 이유가 하느님께서 그리하셨다면, 하느님이 인간의 삶에 개입을 하셨더라면 그건 스스로 사람이 불완전하다는 우주 존재들의 억측을 확증하는 것이지.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개입으로 사람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게 됐을 거란 점이야. 사람은 외부로부터 도움만을 기대하며 자신 내부에서는 신성한 근간을 전혀 발견하지 못하게 되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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