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사회 정치 재미난 사건

[스크랩] 브라질대통령 룰라 무상복지시스템으로 나라를 구했다....

pia99 2014. 2. 15. 03:56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무상복지 문제로 한참 씨끄럽지요. 서울시의 시장은 무차별적 복지 포퓰리즘이라면서 업무도 거부한 채  신문광고까지 내면서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연일 투쟁[?]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무상 복지가 결코 무상이 아닌 경제발전의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있습니다.

 

브라질 대통령 룰라 그는 2003년 대통령에 취임하자 마자 곧바로  브라질의 저소득층  350만명에게 국가예산을 분배해주었고, 해마다 더욱 많은 예산을 더 많은 저소득층에게 분배해 주었습니다. 빈부의 격차가 좁혀져야 나라 경제가 동맥경화에 걸리지 않고 잘 돌아 가게 된다는 사회법칙을 분명하게 보여준 사례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수많은 정치인들과 기득권 세력들이 어떤 비난을 퍼부어 댔을까요?..  고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사람이 대통려이 되었다고  그렇게 비난하던 사람들.. 만약 룰라가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되었다면 , 얼마나 많은 빈정거림과 야유 인신공격에 시달렸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룰라 대통령도  노무현대통령과 같은 길을 걸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통령 되자 마자... 곧바로 탄핵되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 났을지도 모르지요.. 노무현대통령보다 더 복지 포퓰리즘이 심했으니까요?.. 

 

*부인이 출산중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사망하자
초등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정치에 입문*

 

 

재물을 부자들이  모두 독점 하고 있게 되면 나라경제가 절대 원활하게 돌아 갈 수가 없습니다. 잠시 놀다가는 세상...함께 즐기고 신나게 놀다가 떠나가는 것이 이 자연이 준 이치이자 섭리일 것입니다..  

 

 

 

사회 양극화를 극복한 브라질 좌파 대통령 룰라

 

 

우리는 온통 조중동 의 허구적 이념공세로 의식이 마비당한채 살아가고 있다.

그 대표적이 것이 파이가 커져야 분배가 가능하다, 아랫목이 따뜻해야 윗목이 따뜻하다.

 

성장의 결실이 자연히 아래로 떨어진다는 트리클다운등 선성장 후분배론이다.

 

그러나 연평균 4%이상 성장을 이끌면서 채무국에서 3000억달러의 채권국으로 이끈 룰라의 성공은 이들 주장이 얼마나 오류와 허구로 가득찬 것인가를 보여준다.

 

룰라는 기아제로 프로그램과 볼사 파밀리아 프로그램에 의해 2900만 빈민에게 식비와 생계비를 지원하였다.

 

최저임금의 지속적 인상등 보편적 복지를 시행하였다. 브라질에도 오세훈같은 무개념아가 유권자매수라고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보편적 복지가 유효수요를 창출하여 경제성장을 견인하였다. 무려 3600만명이 빈민에서 중산층으로 편입되었다. 사회가 양극화하면 내수산업이 몰락하고 부자들은 해외 사치재소비에 집중하여 성장이 정체된다.

 

1929년 대공황을 보편적 복지로 극복한 스웨덴, 2008경제위기를 보편적 복지로 극복한 브라질등이 우리의 진로를 밝혀주고 있다. 조중동 매연이 아무리 날뛰어도 보편적 복지는 성장의 기초라는 진리는 우리와 함께 있다. 룰라는 87%의 지지로 정치사에 레임덕을 없앴고, 성공한 진보정치란 이정표를 남겼다. 한반도에 평화와 복지, 성장이 넘쳐날 진보정치의 출현을 기대해본다.

 

 

 

민주주의의 롤모델’ ‘엘리트를 넘어선 노동자 대통령’ 남미독립의 아버지 시몬 볼리바르도, 아르헨티나 빈민의 어머니로 불렸던 ‘에비타’ 에바 페론도 그만한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진심을 보여준 정치인과, 정치인의 진심을 믿고 따른 국민. 8년간 그가 이끈 브라질에는 우파와 좌파의 경계도, 노동자와 부유층의 대립도 없었다.

▲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모두를 위한 정치,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그의 포부는 비웃음을 샀지만 그가 만들어낸 브라질의 오늘은 민주주의에서 당연하게 여겨졌던 ‘레임덕’이라는 용어마저 무색하게 만들었다.

 

31일(현지시간) 퇴임을 앞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에 대한 전세계의 찬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브라질 여론조사기관 센수스가 룰라 대통령의 퇴임을 사흘 앞둔 29일 발표한 여론 조사 결과 룰라 대통령의 개인 지지율은 87%를 기록했다. 정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83.4%로, 2003년 정부 출범 이래 최고치를 나타냈다. 룰라 대통령은 국영 라디오의 주례 담화 ‘대통령과의 커피 한잔’의 고별방송에서 “지난 8년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지지해 준 국민에게 감사한다.”고 밝히고 눈물을 흘렸다.

 

2003년 그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브라질은 300억 달러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라는 빚더미를 안고 있었다. “엘리트들이 해내지 못한 것을 선반공 출신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그의 외침은 공허했고, 오히려 그의 노동자 성향이 브라질 사회의 대립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가 우세했다.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구두닦이, 금속공장 노동자를 전전하던 강성 노동운동가의 대통령 당선은 노동자 계급이 일으킨 ‘깜짝 반란’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의 가능성을 현실로 바꿨다. 룰라 정부는 사회간접시설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물류시설 확충, 에너지 개발 확대 등을 담은 경제성장촉진(PAC) 프로그램을 실시해 8년간 연평균 7.5%의 실질성장률을 기록했다. ‘빈곤 퇴치 프로그램’은 2900만명을 ‘먹을 고민’에서 구출했고, 중산층은 3000만명 이상 늘었다. 국제사회에서는 경제와 정치 모두에서 미국 중심의 구도에 맞서 ‘할 말은 하는’ 지도자로 평가되며 G7 시대를 다자외교 시대로 바꾼 주역으로 평가된다.

 

 

룰라 대통령의 성공에는 ‘실용’ ‘포용’ ‘상생’ ‘스킨십’ ‘협상’ 등 다섯 가지 리더십이 크게 작용했다. 그의 정책엔 좌도, 우도 없었다. ‘강한 추진력’을 제외한 모든 신념을, 실질적인 결과를 위해서는 과감히 버렸다.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아래 노동운동 현장에서 40년 가까이 대립하던 대기업과 기존 정치 세력의 힘을 적극 활용했다. 10여개의 정당을 규합해 연립내각을 구성하고 기업인들도 적극 영입했다.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을 펴면서 브라질 경제를 지배하는 농축산 기업들에 대해서도 지원책을 펼쳐 상생을 모색했다.

 

8년간 이어진 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는 ‘심장에서 우러나는 정치’를 내세운 스킨십의 결과다. 8년간 670일가량을 수도가 아닌 지방에서 보내며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고, 현장에서는 경호원의 제지를 뿌리치고 국민 속으로 뛰어들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모든 과정에서 노동운동가 출신 특유의 협상력이 중요한 무기로 쓰였다고 평가한다. 모든 정치 활동을 협상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에 정당 간 대립, 기업인과 노동자의 대립, 국제사회의 역학 구도에서 룰라는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온건하게 목소리를 내며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90%에 가까운 국민의 성원 속에 시민으로 돌아가는 룰라 대통령의 향후 행보도 관심거리다. 그는 대선 재출마(3선) 가능성에 대해 “신은 한 사람에게 두 번 선물을 주지 않는다.”면서 “대통령직 복귀를 바라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잘라 말했다. 로이터통신 등 일부 외신들은 그가 브라질 국내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유엔 사무총장 등 국제사회의 요직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룰라가 일궈낸 브라질은 이제 그의 정치적 양녀인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당선자로 이어진다. 호세프 신임 대통령은 ‘PAC의 어머니’로 불릴 정도로 룰라 대통령의 정책에 깊이 관여했다. 취임 이전이지만 그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70%에 육박하는 이유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만약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야당[한나라당]의 반발과 공격에도[탄핵사태] 굴하지 않고 소신껏 자신의 의지대로  정치를 해 나갔다면,  룰라 대통령 처럼 이 나라를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처럼 차별이 심하고 인맥 지연 학연등 불평등 구조가 심각한 속에서는 결코 성공할 수 있는 대통령이 나올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룰라 브라질 대통령의 퇴임과 교훈

 

요즘 내 생각들 2011/01/04 09:00 정운현

 

 

‘성공한 좌파 대통령’ 룰라 브라질 대통령이 지난해 마지막날 퇴임했습니다. 한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퇴임 3일 전 그의 개인 지지율은 87%로 나타났습니다. 가히 기록적인 수치라 할만합니다. 취임 초기 전 국민을 위한 정치,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의 포부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룰라 대통령은 8년 뒤 ‘레임덕’이라는 용어마저 무색할 정도로 큰 업적과 또 국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대통령궁을 떠났습니다.

1945년 브라질 북동부 지역에서 빈농의 아들로 출생한 룰라 대통령은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구두닦이를 하였으며, 15세 때 금속공장 근로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75년 철강노조 위원장에 당선된 후 노동자당을 결성한 그는 89년 이후 세 차례 대선에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처음으로 승리하였고, 다시 2006년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


2003년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했을 때 브라질의 상황은 최악이었습니다. 당시 브라질은 300억 달러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빚더미를 안고 있었고 서민경제는 바닥이었습니다. 내로라는 경제 전문가들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선반공 출신인 그가 이 문제를 잘 해결해 내리라고는 별로 기대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 그가 내놓은 정치적 결단은 ‘실용정치’였습니다.

자신을 지지했던 진보진영으로부터 '변절자'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는 보수진영을 끌어안았습니다. 우선 그는 10여 개의 정당을 규합, 연립내각을 구성해 정치적 안정을 꾀했습니다. 그리고는 기업인들도 적극 영입해 정부 사업에 동참시켰습니다. 특히 그는 스킨십을 통한 '소통의 정치'를 폈습니다. 임기 4분의1 가까운 670일 동안을 그는 지방에서 먹고 자며 현장의 민심을 들었습니다.

정책의 대부분은 ‘서민 살리기’로 모아졌습니다. 사회간접시설에 대한 과감한 투자 등을 골자로 한 경제성장촉진(PAC) 프로그램을 추진하였고, 그 결과 8년간 연평균 7.5%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비단 양적 성장만이 아닙니다. 저소득층에게 생계비를 지원하고 빈민들에게는 식량을 무상공급했습니다. 이같은 ‘빈곤퇴치 프로그램’으로 2900만명을 기아에서 구출했으며, 중산층은 3000만명 이상 늘어났습니다. 8년 만에 브라질은 세계 8위의 경제대국으로 떠올랐습니다. 국제사회에서도 브라질은 마침내 그 목소리를 높여가기 시작했습니다.

소통과 보수 끌어안기로 서민정치 펼쳐

대선 재출마(3선) 가능성에 대해 그는 “신은 한 사람에게 두 번 선물을 주지 않는다.”면서 “대통령직 복귀를 바라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고향이자 사저가 있는 상파울루주 캄포시로 귀향하여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갔습니다. 지난 1일 브라질은 새 대통령을 맞았습니다. 브라질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그 주인공입니다. 룰라 대통령 시절 PAC에 깊이 관여했던 호세프 대통령은 룰라의 ‘정치적 양녀’로 불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룰라의 정치적 신념은 호세프 대통령에 의해 계승될 것이 확실시 됩니다. 2011년, 세계가 브라질을 다시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룰라 대통령의 임기 8년은 우리에게 남다른 감회로 다가온다고 하겠습니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2003년, 한국에서도 그와 비슷한 성향의 노무현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두 사람의 집권은 취임 초기 세계적인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서민 출신 정치인으로 보수정권과 싸워 대권을 쟁취했으며, 사회현안 해결이나 향후 대미관계 등에서 적잖은 변화가 예고됐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노무현 대통령도 재임 시절 지지자들로부터 ‘변절자’ 소리를 들으면서 한나라당과의 대연정도 시도했었고, 또 미국과도 원만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후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보수진영은 김대중-노무현 집권 10년을 두고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합니다. 반면 룰라 대통령의 두 차례 집권 8년은 영광과 기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어디서, 무엇이 이런 차이를 가져 왔을까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진보진영은 그 점을 냉정히 평가하고 또 교훈을 찾아야할 것입니다.

* 이 글은 3일자 <메트로신문>에 실린 칼럼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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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김형희산야초
글쓴이 : 김형희산야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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