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 관심론(觀心論) 1
“오직 마음을 觀하는 한 법이 모든 行을 다 거두어 들이는 것”
惠可問曰 혜가문왈
若有人 志求佛道 약유인 지구불도
當修何法 最爲省要 당수하법 최위성요
師答曰 사답왈
唯觀心一法 유관심일법
摠攝諸行 名爲最要 총섭제행 명위최요
問曰 문왈
云何一法 摠攝諸行 운하일법 총섭제행
혜가가 물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불도를 얻고자 한다면 어떤 법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긴요합니까?”달마스님이 대답했다. “오직 마음을 관(觀)하는 한 법이 모든 행(行)을 다 거두어 들이는 것이니, 이 법이 가장 간단하고 요긴한 것이라 한다.”물었다. “어째서 한 법이 모든 행을 거두어 들인다고 합니까?”
師答曰 사답왈
心者萬法之根本也 심자만법지근본야
一切諸法 唯心所生 일체제법 유심소생
若能了心 萬行俱備 약능료심 만행구비
猶如大樹 所有枝條 유여대수 소유지조
及諸花菓 皆悉因根 급제화과 개실인근
栽樹者 存根而始生 재수자 존근이시생
伐樹者 去根而必死 벌수자 거근이필사
若了心修道則 省功而易成 약료심수도즉 성공이이성
若不了心而修道 乃費功而無益 약불료심이수도 내비공이무익
故知一切善惡 皆由自心 고지일체선악 개유자심
心外別求 終無是處 심외별구종무시처
달마스님이 대답했다. “마음은 모든 것의 근본이므로 모든 현상은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알면 만 가지 행이 갖추어지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큰 나무의 가지나 꽃이나 열매는 모두 뿌리가 근본이다. 나무를 가꾸려면 뿌리를 북돋워야 살아날 것이고, 나무를 없애려면 그 뿌리를 베어버리면 반드시 죽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을 알고 도를 닦으면 힘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이룰 것이고, 마음을 알지 못하고 도를 닦으면 힘만 허비 할뿐 아무 이익이 없다. 그러므로 모든 선악이 자기 마음에서 일어남을 알아야 한다. 마음 밖에 따로 구한다면 옳지 않은 것이다.
又問曰 우문왈
云何觀心 稱之爲了 운하관심 칭지위료
答曰 菩薩摩訶薩 답왈 보살마하살
行深般若波羅密多時 행심반야바라밀다시
了四大五蘊 本空無我 요사대오온 본공무아
了見自心起用 有二種差別 요견자심기용 유이종차별
云何爲二 一者淨心 二者染心 운하위이 일자정심 이자염심
其淨心者 卽是無漏眞如之心 기정심자 즉시무루진여지심
其染心者 卽是有漏無明之心 기염심자 즉시유루무명지심
此二種心 自然本來俱有 차이자심 자연본래구유
雖假緣和合 互不相生 수가연화합 호불상생
또 물었다. “어떻게 마음을 관해야 알았다고 합니까?”
대답했다. “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사대오온(四大五蘊:몸의 구성요소인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을 사대라 하고, 육신과 정신작용을 오온이라 함)이 본래 공하여 ‘나’가 없음을 알며, 또 자기 마음을 쓰는데 두 가지 차별이 있음을 분명히 본다. 무엇을 두 가지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깨끗한 마음이요, 둘째는 물든 마음이다. 깨끗한 마음이란 번뇌가 없는 진여(眞如)의 마음이요, 물든 마음이란 번뇌가 있는 무명(無明)의 마음이다. 이 두가지 마음이 본래부터 갖추어 있어 비록 인연따라 화합하기는 하지만 서로 생성하는 것은 아니다.
달마 관심론(觀心論) 2
깨끗한 마음은 착한 인연 즐기고 물든 마음은 항상 악한 업 생각
淨心恒樂善因 染心常思惡業 정심항락선인 염심상사악업
若眞如自覺 覺不受所染則稱之爲聖 약진여자각 각불수소염즉칭지위성
遂能遠離諸苦 證涅槃樂 若隨染造惡 수능원리제고 증열반락 약수염조악
受其纏覆則名之爲凡 於是 수기전부즉명지위범 어시
沈淪三界 受種種苦 何以故 침륜삼계 수종종고 하이고
由彼染心 障眞如體故 十地經云 유피염심 장진여체고 십지경운
衆生身中 有金剛佛性 猶如日輪 중생신중 유금강불성 유여일륜
體明圓滿 廣大無邊 只爲五陰 체명원만 광대무변 지위오음
黑雲所覆 猶如甁內燈光 不能顯現 흑운소부 유여병내등광 불능현현
又涅槃經 一切衆生 皆有佛性 우열반경 일체중생 개유불성
無明覆故 不得解脫 佛性自覺也 무명부고 부득해탈 불성자각야
但能自覺 覺智明了 離其所覆 단능자각 각지명료 이기소부
則名解脫 故知一切諸善 즉명해탈 고지일체제선
以覺爲根 因其覺根 이각위근 인기각근
遂能顯現諸功德樹 涅槃之菓 수능현현제공덕수 열반지과
由此而成 如是觀心 可名爲了 유차이성 여시관심 가명위료
깨끗한 마음은 항상 착한 인연을 즐기고, 물든 마음은 항상 악한 업을 생각한다. 만약 진여의 마음을 깨쳐 그것이 더러움에 물들지 않음을 깨달으면 이 사람은 성인이다. 그는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열반의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물든 마음을 따라 악한 짓을 하여 그 업에 얽히고 덮이게 되면 이를 범부라 한다. 그는 항상 삼계(三界)에 빠져 갖가지 괴로움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 물든 마음으로 말미암아 진여의 마음이 가려졌기 때문이다. <십지경>에 말하기를 ‘중생의 몸 가운데 금강석처럼 굳은 불성이 있어 해와 같이 밝고 원만하며 광대무변하지만, 단지 오음(五陰)의 검은 구름에 덮여 마치 항아리 속의 불빛이 밖으로 비추지 못하는 것과 같다.’ 하였고 또 <열반경>에 말하기를 ‘모든 중생에게 불성(佛性)이 있으나 무명에 덮여서 해탈하지 못한다.’ 하였다. 불성이란 깨침이다. 스스로 깨치고 그 깨친 지혜가 밝아서 덮였던 것에서 벗어나면 이것이 곧 해탈이다. 그러므로 모든 선(善)은 깨침으로 뿌리를 삼고, 그 깨침의 뿌리로 인해 모든 공덕의 나무가 무성하여 열반의 열매가 여문다. 이와 같이 마음을 관하는 것을 마음을 알았다고 한다.”
又問曰 上說眞如佛性 우문왈 상설진여불성
一切功德 因覺爲根 일체공덕 인각위근
未審無明之心 一切諸惡 以何爲根 미심무명지심 일체제악 이하위근
또 물었다. “위에서 말씀하신 진여불성(眞如佛性)의 모든 공덕은 깨침이 뿌리가 됨은 알았으나 무명의 마음과 모든 악은 무엇을 뿌리로 삼는 것입니까.”
答曰 無明之心 답왈 무명지심
雖有八萬四千煩惱情欲 수유팔만사천번뇌욕정
恒沙衆惡 無量無邊 取要言之 항사중악 무량무변 취요언지
皆因三毒 以爲根本 其三毒者 개인삼독 이위금본 기삼독자
卽貪嗔癡也 此三毒心 즉탐진치야 차삼독심
自然本來具有一切諸惡 자연본래구유일체제악
猶如大樹根 雖是一 유여대수근 수시일
所生枝葉 其數無邊 소생지엽 기수무변
彼三毒根 一一根中 生諸惡業 피삼독근 일일근중 생제악업
百千萬億 倍過於前 不可爲喩 백천만억 배과어전 불가위유
대답했다. “무명의 마음에는 팔만사천의 번뇌와 정욕이 있어 갠지스강의 모래 수효만큼이나 악한 것들이 한량없으나 요약해서 말한다면 삼독이 근본이다. 삼독이란 탐욕, 성냄, 어리석음인데 이 삼독심에는 저절로 모든 악이 들어 있다. 마치 큰 나무의 뿌리는 하나이지만 가지나 잎은 수없이 많은 것처럼 삼독의 뿌리는 하나이지만 그 속에는 나무의 비유보다 백천만배나 더하여 비유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달마 관심론(觀心論) 3
삼독이 육근에 작용하면 六賊 육적 돌이켜 육바라밀 이루어야
如是三毒 於一本體 여시삼독 어일본체
自爲三毒 若應現六根 자위삼독 약응현육근
亦名六賊 六賊者卽六識也 역명육적 육적자즉육식야
由此六識 出入諸根 貪着萬境 유차육적 출입제근 탐착만경
然成惡業 障眞如體 연성악업 장진여체
故名六賊 一切衆生 고명육적 일체중생
由此三毒 及以六賊 유차삼독 급이육적
惑亂身心 沈淪生死 혹란신심 침륜생사
輪廻六趣 受諸苦惱 윤회육적 수제고뇌
이러한 삼독은 하나의 본체에서 절로 삼독이 되어 만약 육근(六根)에 작용하면 육적(六賊)이 된다. 육적은 곧 육식(六識)이다. 이 육식이 육근을 드나들며 온갖 대상에 탐착심을 일으키므로 악한 업을 지어 진여를 가리게 된다. 그러므로 육적이라 일컫는다. 모든 중생은 이 삼독과 육적으로 말미암아 몸과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생사의 구렁에 빠져 육도(六途)에 윤회하면서 온갖 고통을 받는다.
猶如江河 因小泉源 유여강하 인소천원
涓流不絶 乃能彌漫 연류부절 급능미만
波濤萬里 若復有人 파도만리 약부유인
斷其根源則衆流皆息 단기근원즉중류개식
求解脫者 能轉三毒 구해탈자 능전삼독
爲三聚淨戒 能轉六賊 위삼취정계 능전육적
爲六波羅密 自然永離一切諸苦 위육바라밀 자연영리일체제고
비유하자면 강물은 본래 조그마한 샘에서 발원하여 끊이지 않고 흘러서 마침내 물이 가득 넘실거리며 끝없는 파도를 이루게 되지만 만약 어떤 사람이 그 물줄기의 근원을 끊으면 모든 흐름이 다 쉬게 된다. 이처럼 해탈을 구하는 사람도 삼독을 전환하여 삼취정계(三聚淨戒:부처님이 정한 규칙을 지켜 악을 막는 세 가지 법. 착한 법은 행하라, 중생을 이롭게 하라, 계율을 잘 지켜라)를 이루고, 육적을 돌이켜서 육바라밀을 이루면 절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것이다.”
又問曰 三毒六賊 우문왈 삼독육적
廣大無邊 若唯觀心 광대무변 약유관심
云何免彼無窮之苦 운하면피무궁지고
또 물었다. “삼독과 육적이 광대 무변한데 오직 마음만 관한다고 해서 어떻게 한없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答曰 三界業報 답왈 삼계업보
唯心所生 若能了心 유심소생 약능요심
於三界中 則出三界 어삼계중 즉출삼계
其三界者 則三毒也 기삼계자 즉삼독야
貪爲欲界 嗔爲色界 탐위욕계 진위색계
癡爲無色界 由此三毒心 치위무색계 유차삼독심
結集諸惡 業報成就 결집제악 업보성취
輪廻六趣故 名爲三界 윤회육취고 명위삼계
又三毒造業輕重 受報不同 우삼독조업경중 수보부동
分歸六趣故 名六趣 분귀육취고 명육취
대답했다. “삼계의 업보는 마음에서 생긴 것이니, 마음만 깨치면 삼계 안에 있으면서 삼계를 벗어난다. 삼계가 바로 삼독이다. 탐심이 욕계가 되고, 성내는 마음이 색계가 되고, 어리석은 마음이 무색계가 된다. 이 삼독심이 갖가지 악을 결집하여 업보를 이루어 육도를 윤회하게 되므로 이를 삼계라 한다. 또 삼독이 짓는 업의 경중에 따라 받는 과보도 달라서 여섯 곳으로 나누어지게 되므로 육도라 하는 것이다.”
달마 관심론(觀心論) 4
진여의 성품 삼독에 덮였으니 삼독만 제거하면 해탈이라
又問曰 云何輕重 分之爲六 우문왈 운하경중 분지위육
答曰 若有衆生 不了正因 답왈 약유중생 불료정인
迷心修善 未免三界 生三輕趣 미심수선 미면삼계 생삼경취
云何三輕 所謂迷修十善 妄求快樂 운하삼경 소위미수십선 망구쾌락
未免貪界 生於天趣 迷持五戒 미면탐계 생어천취 미지오계
妄起愛憎 未免嗔界 生於人趣 망기애증 미면진계 생어인취
迷執有爲 信邪求福 未免癡界 미집유위 신사구복 미면치계
生於修羅趣 云何三重 생어수라취 운하심중
所謂縱三毒心 唯造惡業 소위종삼독심 유조악업
墮三重趣 若貪業重者 타삼중취 약탐업중자
墮餓鬼趣 嗔業重者 墮地獄趣 타아귀취 진업중자 타지옥취
癡業重者 墮畜生趣 如是三重 치업중자 타축생취 여시삼중
通前三輕 遂成六趣 故知惡業 통전삼경 수성육취 고지악업
由自心生 但能攝心 離諸邪惡 유자심생 단능섭심 이제사악
三界六趣 輪廻之苦 自然消滅 삼계육취 윤회지고 자연소멸
能盡諸苦則名解脫 능진제고즉명해탈
물었다. “여섯 갈래로 나눠지는 가벼움과 무거움은 무엇입니까.”
대답했다. “만약 어떤 중생이 바른 길을 알지 못하고 그릇된 마음으로 선(善)을 닦으면 삼계를 면하지 못해서 세 가지 가벼운 곳에 태어난다. 세 가지 가벼움이란 무엇인가. ? 말하자면 그릇되게 십선(十善)을 닦으면서 함부로 쾌락을 누린다면 탐욕의 세계를 면치 못해 하늘(天趣)에 태어나고, 그릇된 마음으로 오계(五戒)를 지켜 함부로 사랑과 미움을 일으키면 성내는 세계를 면치 못해 인간에 태어나고, 그릇되게 유위법(有爲法)에 집착하여 삿된 법을 믿어 복을 구하면 어리석은 세계를 면치 못해 아수라에 태어난다.
이런 세 종류를 세 갈래의 가벼운 길이라 한다. 무엇이 세 가지 무거운 길인가. 말하자면 삼독의 마음을 마음대로 부려 악업을 짓는 것인데, 만약 탐욕의 악업이 무거운 자는 아귀에 떨어지고, 성냄의 악업이 무거운 자는 지옥에 떨어지며, 어리석음의 악업이 무거운 자는 축생에 떨어진다. 이 세 가지의 무거움과 앞의 세 가지 가벼움을 합쳐 여섯 갈래(六趣)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업이란 오직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마음을 잘 다스려 그릇되고 악한 것을 버리면 삼계와 여섯 갈래의 길로 떠도는 고통은 절로 소멸하고,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다면 이를 해탈이라 한다.”
又問曰 如佛所說 我於阿僧祇劫 우문왈 여불소설 아어아승지겁
無量勤苦 方成佛道 云何今說 무량근고 방성불도 운하금설
唯除三毒 則名解脫 유제삼독 즉명해탈
答曰佛所說 言無虛妄也 답왈불소설 무언허망야
阿僧祗者 卽三毒心也 아승지자 즉삼독심야
胡名阿僧祗 漢言不可數 호명아승지 한언불가수
此心中有恒沙惡念 차심중유항사악념
一一念中皆有一劫 일일념중개유일겁
恒沙者不可數也 以三毒惡念 항사자불가수야 이삼독악념
如恒沙故 言不可數也 여항사고 언불가수야
眞如之性 旣被三毒之所覆 진여지성 기피삼독지소부
若不超彼恒河沙惡之念 약불초피항하사악지염
云何名解脫 운하명해탈
다시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나는 한없는 아승지겁을 부지런히 수행하여 불도를 이루었다’하셨는데 스님께서는 어째서 오직 삼독만을 제거하면 해탈한다 하십니까.”
대답했다. “부처님의 말씀은 진실이다. 아승지란 곧 삼독심이다. 인도어인 아승지는 한문으로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이다. 마음에는 갠지스강 가의 모래만큼이나 악한 생각이 있고, 그 낱낱의 생각 중에 다 일겁씩 있다. 강 가의 모래를 셀 수 없듯이 삼독의 악한 생각도 모래와 같으므로 셀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진여의 성품이 삼독에 덮였으니 모래 수만큼이나 많은 악한 생각에서 초월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탈이라 하겠는가.
달마 관심론(觀心論) 5
一毒만 제거해도 한없는 선 이뤄 三毒 없애면 피안의 세계 도달
今者能除貪嗔癡等三毒心 금자능제탐진치등삼독심
是則名爲度得三大阿僧祗劫 시즉명위도득삼대아승지겁
末世衆生愚癡鈍根 不解如來 말세중생우치둔근 불해여래
甚深妙義三 阿僧祗秘密之說 심심묘의삼 아승지비밀지설
遂言歷此塵劫 方得成佛 수언역차진겁 방득성불
末劫豈不疑誤修行之人 말겁기불의오수행지인
退菩提道也 퇴보리도야
지금 탐욕, 성냄, 어리석음 등의 삼독심만 없애면 이것이 곧 삼 아승지겁을 뛰어넘는 것이 되는데, 말세 중생들은 어리석고 둔하여 부처님의 깊고 묘한 삼 아승지겁의 비밀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한량없는 겁을 지내야만 성불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어찌 말세에 수행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 알고 의심을 내게 하여 보리도(菩提道)에서 퇴보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又問曰 菩薩摩訶薩 우문왈 보살마하살
由持三趣淨戒 유지삼취정계
行六波羅密方成佛道 행육바라밀방성불도
今令學者 唯持觀心 금령학자 유지관심
不修戒行 云何成佛 불수계행 운하성불
答曰 三聚淨戒者 답왈 삼취정계자
則除三毒心也 즉제삼독심야
除一毒成無量善 제일독성무량선
聚者會也 以除能三毒 취자회야 이제능삼독
卽有三無量善 普會於心 즉유삼무량선 보회어심
名三聚淨戒 六波羅密者 명삼취정계 육바라밀자
卽淨六根 胡名波羅密 즉정육근 호명바라밀
漢言達彼岸 六根淸淨 한언달피안 육근청정
不染世塵 卽是出煩惱 불염세진 즉시출번뇌
便至彼岸也 故名六波羅密 변지피안야 고명욱바라밀
또 물었다. “보살마하살이 삼취정계(三聚淨戒)를 가지고, 또 육바라밀을 행해야 불도를 이룬다 하셨는데, 지금 수행자로 하여금 오직 마음만 관하고 계행을 닦지 않게 한다면 어떻게 성불할 수 있겠습니까.”대답했다. “삼취정계란 바로 삼독심을 제거하는 것이니, 일독(一毒)만 제거해도 한없는 선을 이루게 된다. 취(聚)란 모았다는 뜻인데, 삼독을 제거하면 곧 세 가지 무량한 선만 있게 된다. 그 선이 모두 마음에 모이게 되므로 삼취정계라 한다. 또 육바라밀이란 곧 육근을 맑게 하는 것이니, 인도에서는 바라밀이라 하고 한문으로는 피안(彼岸)에 이른다는 뜻이다. 육근이 청정하여 세상 일에 물들지 않으면 곧 번뇌에서 벗어나 피안에 이르게 되므로 육바라밀이라 한다.
又問曰 如經所說 三聚淨戒者 우문왈 여경소설 삼취정계자
誓斷一切惡 誓修一切善 단일체악 서수일체선
誓度一切衆生 今者唯言制三毒心 서도일체중생 금자유언제삼독심
豈不文義 有所乖也 기불문의 유소괴야
答曰 佛所說經 답왈 불소설경
是眞實語 應無謬也 시진실어 응무류야
菩薩摩訶薩 於過去因中 보살마하살 어과거인중
修菩薩行時 爲對三毒 수보살행시 위대삼독
發三誓願 持三聚淨戒 발삼서원 지삼취정계
또 물었다. “경전에는 ‘삼취정계란 모든 악 끊기를 서원하고, 온갖 선 닦기를 서원하고,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를 서원하는 것이다’고 했는데, 지금은 오직 삼독심만 제거하라 하시니 이는 경문의 뜻과 어긋나는 것이 아닙니까.”
대답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전은 진실한 말씀이라 거짓됨이 없다. 보살마하살이 과거세상에서 인행(因行: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함)의 지위에서 보살행을 닦을 때, 삼독을 없애기 위해 세 가지 서원을 세워 삼취정계를 지켰다.
달마 관심론(觀心論) 6
계·정·혜 청정한 법 지켜 삼독 벗어나 불도 이루어야
常修戒對貪毒 誓斷一切惡故 상수계대탐독 서단일체악고
常修定對瞋毒 誓修一切善故 상수정대진독 서수일체선고
常修慧對痴毒 誓度一切衆生故 상수혜대치독 서도일체중생고
由持如是 戒定慧等三種淨法故 유지여시 계정혜등삼종정법고
超彼三毒惡業 成佛道也 초피삼독악업 성불도야
以能除三毒 卽諸惡消滅故 이능제삼독 즉제악소멸고
名之爲斷 以能持 三聚淨戒 명지위단 이능지 삼취정계
卽諸善具足故 名之爲修 즉제선구족고 명지위수
以能斷惡修善則萬行成就 이능단악수선즉만행성취
自他俱利 普濟群生故 名之爲度 자타구리 보제군생고 명지위도
故知所修戒行 不離於心 고지소수계행 불리어심
항상 계행을 닦은 것은 탐욕의 독을 제거하여 모든 악 끊기를 서원한 때문이며, 선정(禪定)을 닦은 것은 성냄의 독을 제거하여 모든 선 닦기를 서원한 때문이요, 항상 지혜를 닦은 것은 모든 어리석은 독을 제거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하려는 서원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처럼 계·정·혜의 세 가지 청정한 법을 지킴으로써 삼독의 악업을 벗어나 불도를 이루는 것이다. 삼독을 끊으면 모든 악이 소멸되기 때문에 ‘끊는다’ 한 것이며, 삼취정계를 지키면 모든 선이 갖추어지므로 ‘닦는다’ 한 것이고, 악을 끊고 선을 닦으면 모든 수행이 성취되어 자타가 이롭게 되어 널리 중생을 구제하기 때문에 ‘제도한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계행을 닦는 것도 마음을 떠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若自心淨 一切衆生 약자정심 일체중생
皆悉淸淨 故經云 개실청정 고경운
心垢卽衆生垢 心淨卽衆生淨 심구즉중생구 심정즉중생정
又云 欲淨佛土 先淨其心 우운 욕정불토 선정기심
隨其心淨則佛土淨 수기심정즉불토정
若能制得三種毒心 약능제득삼종독심
三聚淨戒 自能成就 삼취정계 자능성취
만약 스스로의 마음이 맑으면 모든 중생도 청정해진다. 그래서 경에도 ‘자기 마음이 더러우면 모든 중생도 더러워지고, 마음이 맑으면 중생도 맑아진다’하였고, 또 ‘불토(佛土)를 맑게 하고자 한다면 먼저 그 마음을 맑게 하라. 마음이 맑아지면 불토 역시 맑아진다’ 하였다. 그러니 세 가지의 독한 마음만 다스릴 수 있다면 삼취정계는 절로 성취되는 것이다.”
又問曰 如經所說 우문왈 여경소설
六波羅密者 亦名六度 육바라밀자 역명육도
所謂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智慧 소위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
今言六根淸淨 名爲六波羅密者 금언육근청정 명위육바라밀자
若爲通會 又度者 其義云何 약회통회 우도자 기의운하
答曰欲修六度 當淨六根 답왈욕수육도 당정육근
欲淨六根 先降六賊 能捨眼賊 욕정육근 선항육적 능사안적
離諸色境 心無固吝 名爲布施 이제색경 심무고인 명위보시
能禁耳賊 於彼聲塵 不令縱逸 능금이적 어피성진 불령종일
名爲持戒 能伏鼻賊 等諸香臭 명위지계 능복비적 등제향취
自在調柔 名爲忍辱 자재조유 명위인욕
또 물었다. “경전에 말씀한 육바라밀은 육도(六度)로서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를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육근이 청정한 것이 육바라밀이라 한 뜻을 알려주시고 또 도(度)란 무슨 뜻입니까.”
대답했다. “육도를 수행하려면 육근을 맑게 해야 하고, 육근을 맑게 하려면 먼저 여섯 가지 유혹(六賊)을 내쳐야 한다. 눈의 유혹을 버리면 물질의 애착을 떠나 마음에 인색함이 없어지는데 이를 보시라 한다. 귀의 유혹을 막아 헛된 소리에 얽매이지 않는 것을 지계라 하고, 코의 유혹을 항복시키면 모든 냄새 따위에 분별이 없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인욕이라 하며…
달마 관심론(觀心論) 7
육바라밀은 배와 같아서 모든 중생 피안으로 운반
能制舌賊 不貪邪味 讚詠講說 능제설적 불탐사미 찬영강설
無疲厭心 名爲精進 能伏身賊 무피염심 명위정진 능복신적
於諸觸欲 湛然不動 名爲禪定 어제촉욕 담연부동 명위선정
能調意賊 不順無明 常修覺慧 능조의적 불순무명 상수각혜
樂諸功德 名爲智慧 又度者運也 악제공덕 명위지혜 우도자운야
六波羅密 喩若船筏 能運衆生 육바라밀 유약선벌 능운중생
達彼岸故 云六度 달피안고 운육도
혀의 유혹을 다스리면 그릇된 맛을 탐내지 않고, 불법을 읊고 이야기하되 피로하다거나 싫어함이 없는 것을 정진이라 하며, 육신의 유혹을 항복받으면 모든 감촉(感觸)의 욕망에 담담해져서 흔들림이 없는 것을 선정이라 하며, 뜻을 잘 다스리면 무명(無明)을 따르지 않고 항상 깨침의 지혜를 닦으면서 모든 공덕을 즐거워하는 것을 지혜라고 한다. 또 도(度)라고 함은 ‘운반한다’는 뜻이다. 육바라밀은 비유하자면 배와 같아서 모든 중생을 운반하여 피안에 이르게 하므로 육도라 하는 것이다.”
又問曰 經文所說 釋迦如來 우문왈 경문소설 석가여래
爲菩薩時 曾飮三斗六升乳 위보살시 증음삼두육승유미
方成佛道 卽先因食乳後 방성불도 기선인식유후
證佛果 豈唯觀心 得解脫也 증불과 기유관심 득해탈야
答曰 誠如所說 無虛妄也 답왈 성여소설 무허망야
必因食乳 然始成佛 필인식유 연시성불
佛所說食乳者 불소설식유자
非是世間不淨之乳 비시세간부정지유
乃是眞如淸淨法乳 시진여청정법유
三斗者 卽三聚淨戒 삼두자 즉삼취정계
六升者 六波羅密 육승자 육바라밀
佛成道時 由食此淸淨法乳 불성도시 유식차청정법유
方證佛果 若言如來 食於世 방증불과 약언여래 식어세
間狀欲和合 不淨 腥之乳者 간음욕화합 부정전성지유자
豈不成謗之甚乎 기불성방지심호
다시 물었다. “경문에는 ‘석가여래께서 보살로 계실 때, 서 말 여섯되의 우유죽을 드시고 비로소 성불하셨다’ 했습니다. 먼저 우유를 드신 후에 불과(佛果)를 증득하셨는데, 어째서 관심(觀心)만으로 해탈한다 하십니까.”대답했다. “진실로 경문의 말씀은 허망함이 없다. 우유를 드신 후에 비로소 성불하셨는데, 이는 세속의 부정한 우유가 아니라 진여(眞如)의 깨끗한 법유(法乳)이다. 서 말(三斗)이라 한 것은 삼취정계요, 여섯되(六升)라 함은 육바라밀이다. 부처님이 성도(成道)하실 때, 청정한 법유를 마심으로 해서 불과(佛果)를 얻으셨는데 도리어 말하기를 ‘세속의 음욕으로 화합된 누린내 나는 젖을 먹었다’하니, 비방함이 심한 말이 아니겠는가.
如來者 여래자
自是金剛不壞無漏法身 자시금광불괴무루법신
永離世間諸苦 豈須如是不淨之乳 영리세간제고 기수여시부정지유
以免飢渴也 如經所說 此牛不 이면기갈야 여경소설 차우부
在高原 不在下濕 不食栗麥糠 재고원 부재하습 불식율맥강부
不與特牛同群 其牛身作紫摩金色 불여특우동군 기우신작자마금색
言此牛者 則毘盧遮那佛也 언차우자 즉비로자나불야
여래란 금강석과 같아 무너지지 않는 무루법신(無漏法身 : 번뇌 없는 진실한 몸)이라서 세상의 고통을 영영 떠났는데, 어찌 이같은 부정한 우유로 기갈을 면했겠는가. 경에 말한 것처럼 ‘이 소는 높은 언덕에도 있지 않고, 낮은 습지에도 있지 않고, 곡식이나 지게미도 먹지 않으며, 잡된 소와 어울리지도 않으며, 몸은 자마금색(紫摩金色)이다’하였으니, 이 소는 바로 비로자나불인 것이다.
달마 관심론(觀心論) 8
몸 가운데 진여불성 녹여서 계율의 틀에 넣으면 ‘眞容의 모습’
以大慈悲憐憫一切故 於淸淨法體中 이대자비연민일체고 어청정법체중
流出如是三聚淨戒 六波羅密 유출여시삼취정계 육바라밀
微妙法乳 乳養一切求解脫者 마묘법유 유양일체구해탈자
飮如是淸淨之牛 淸淨之乳 음여시청정지우 청정지유
非獨如來飮之成道 一切衆生 비독여래음지성도 일체중생
若能飮者 皆得成阿 多羅三 三普提 약능음자 개득성아뇩다라삼먁삼보리
又問曰 佛說經中 令衆生修造伽藍 우문왈 불설경중 영중생수조가람
鑄寫形像 燒香散花 燃長明燈 주사형상 소향산화 연장명등
日夜六時行道 持齋禮拜 일야육시행도 지재예배
種種功德 皆成佛道 若唯觀心 종종공덕 개성불도 약유관심
摠攝諸行 說如是事 應虛妄也 총섭제행 설여시사 응허망야
대자비로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겨 청정한 법체에서 이러한 삼취정계와 육바라밀의 미묘한 법유(法乳)를 흘려내리게 해서 해탈을 구하는 이들을 법유로 기르시니, 이와 같은 청정한 소의 청정한 우유를 마시면 비단 부처님만 그걸 드시고 성도(成道)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도 마시기만 하면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얻게 된다.” 다시 물었다. “경전에는 ‘중생이 절을 짓고 성상(聖像)을 세우고, 향을 사르고, 꽃을 뿌리고, 장명등을 켜고, 밤낮으로 여섯 차례나 행도(行道)하고, 재계(齋戒)를 지키며, 예배를 올리는 등 여러 가지의 공덕을 닦으면 불도를 이룬다’ 하셨는데, 오직 관심법(觀心法)에 모든 수행이 포함된다 하시니 이건 전혀 허망한 말 같습니다.”
答曰 佛所說經 有無量方便 답왈 불소설경 유무량방편
以一切衆生 鈍根狹劣 이일체중생 둔근협열
不悟甚深之義 所以假有爲事 불오심심지의 소이가유위사
喩無爲理 若復不修內行 唯只外求 유무위리 약부불수내행 유지외구
希望獲福 無有是處 言伽藍者梵音 희망획복 무유시처 언가람자범음
此言淸淨處也 若永除三毒 常淨六根 차언청정처야 약영제삼독 상정육근
身心湛然 內外淸淨 是則修伽藍也 신심담연 내외청정 시즉수가람야
又鑄寫形像者 卽一切衆生 우주사형상자 즉일체중생
求佛道也 所謂修諸覺行 假像如來眞 구불도야 소위수제각행 가상여래진
容妙相 豈道鑄金銅之所作也 용묘상 기도주금동지소작야
是故求解脫者 以身爲爐 以法爲火 시고구해탈자 이신위로 이법위화
以智慧爲工匠 三聚淨戒 六波羅密 이지혜위공장 삼취정계 육바라밀
以爲模樣 鎔鍊身中眞如佛性 이위모양 용련신중진여불성
遍入一切戒律摸中 如敎奉行 변입일체계율모중 여교봉행
一無缺漏 自然成就眞容之相 일무결루 자연성취진용지상
所謂 究竟常住微妙法身 소위 구경상주미묘법신
非是有爲敗壞之法 若人求道 비시유위패괴지법 약인구도
不解鑄寫眞容 憑何輒言成功德也 불해주사진용 빙하첩언성공덕야
대답했다. “경전은 무수한 방편으로 되어 있다. 중생들은 근기가 둔하고 지혜가 부족하여 깊은 뜻을 알지 못하므로 유위(有爲)의 일로 무위(無爲)의 이치를 나타낸 것이다. 만약 안으로 수행하지 않고 밖에서 복을 얻으려 한다면 옳은 처사가 아니다. 가람이란 범어의 음략(音略)인데 청정처란 뜻이다. 만약 삼독을 영원히 없애고 항상 육근이 깨끗하며,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하여 안팎이 청정하다면 이것이 가람을 짓는 것이다. 또한 불상을 조성하는 것은 중생들이 불도를 구할 때, 말하자면 각행(覺行 : 自覺·覺他하는 행법)을 닦을 때에 여래의 참되고 묘한 모습을 허상으로 반영한 것이지 어찌 법을 금동(金銅)으로 주조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해탈을 바라는 자는 몸으로 불가마를 삼고, 법으로 불을 삼고, 지혜로 공장(工匠)을 삼고, 삼취정계와 육바라밀로 모양을 삼아 몸 가운데 있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을 녹여서 계율의 틀에 넣어 하나도 빠뜨림 없이 가르침대로 행하면 절로 진용(眞容)의 모습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것이 말하자면 허물어지는 유위법이 아니라 영원히 상주하는 절대진리의 미묘법신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도를 구하면서도 이러한 참된 진용(眞容)을 조성하고 그리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무엇으로 공덕을 이룬다 하겠는가.
달마 관심론(觀心論) 9
정법의 향과 꽃 공양하라 하였는데 근기 둔하여 향 태우고 꽃 뿌리니…
燒香者亦非世間有相之香 소향자역비세간유상지향
乃至無爲正法之香 내지무위정법지향
薰諸臭穢 斷無明惡業 훈제취예 단무명악업
悉令消滅 其正法香有五種 실령소멸 기정법향유오종
一者戒香 所謂能斷諸惡 能修諸善 일자계향 소위능단제악 능수제선
二者定香 所謂深信大乘 心無退轉 이자정향 소위심신대승 심무퇴전
三者慧香 所謂常於身心 內外觀察 삼자혜향 소위상어신심 내외관찰
四者解脫香 所謂能斷一切無明結縛 사자해탈자 소위능단일체무명결박
五者解脫知見香 所謂覺察常明 오자해탈지견향 소위각찰상명
通達無碍 如是五香 통달무애 여시오향
名最上香 世間無比 명최상향 세간무비
향(香)이란 세속의 형상이 있는 향이 아니라 무위정법(無爲正法)의 향이다. 더러운 냄새를 없애고 무명의 악업을 끊어 다 소멸시키는 것이다. 정법의 향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계향(戒香)이니, 모든 악을 끊고 선행을 닦는 것이다. 둘째는 정향(定香)이니, 대승(大乘)을 깊이 믿어서 물러남이 없는 마음이다. 셋째는 혜향(慧香)이니, 항상 몸과 마음을 안팎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넷째는 해탈향(解脫香)이니, 모든 무명의 결박을 끊는 것이다. 다섯째는 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이니, 항상 관찰하는 것이 밝아서 걸림없이 통달하는 것이다. 이 다섯 향은 최상의 향으로서 세상에서는 견줄 것이 없다.
佛在世日 令諸弟子 以知慧火 불재세일 영제제자 이지혜화
燒如是無價寶香 供養十方一切諸佛 소여시무가보향 공양시방일체제불
今時衆生 愚癡鈍根 不解如來 금시중생 우치둔근 불해여래
眞實之義 唯將外火 진실지의 유장외화
燒於世間沈檀薰陸質碍之香 소어세간침단훈육질애지향
希望福報 云何可得 又散花者 희망복보 운하가득 우산화자
義亦如是 所謂演 說正法諸功德花 의역여시 소위연 설정법제공덕화
饒益有情 散治一切眞如之性 요악유정 산치일체진여지성
普施莊嚴 此功德花佛所稱歎 보시장엄 차공덕화불소칭탄
究竟常住 無凋落期 구경상주 무조락기
부처님이 생존했을 때, 제자들에게 지혜의 불로써 이러한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보배의 향을 사루어 시방세계의 부처님에게 공양하라 하셨는데, 요즘 중생은 어리석고 근기가 둔하여 여래의 진실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침단·훈육 등 제조된 향을 불로써 태우며 복을 바라니 어찌 복을 얻겠는가. 또 꽃을 뿌리는 것도 역시 같은 이치이다. 말하자면 정법(正法)의 공덕꽃을 설명하여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진여의 성품을 다스리고 뿌려서 널리 장엄(莊嚴)을 베푼다면 이런 공덕의 꽃이야말로 부처님이 칭찬하는 것으로 영원히 시들거나 떨어지지 않는다.
若復有人 散如是花 獲福無量 약부유인 산여시화 획복무량
若言如來 令諸弟子及衆生等 약언여래 영제제자급중생등
剪截艶綵 傷損草木 以爲散花 전절염채 상연초목 이위산화
無有是處 所以者何 무유시처 소이자하
持淨戒者 於諸天地森羅萬像 지정계자 어제천지삼라만상
不令觸犯 誤損者由獲大罪 불령촉범 오손자유획대죄
況復今者加毁淨戒 傷損萬物 황부금자가훼정계 상연만물
求於福報 欲益反損 豈有是乎 구어복보 욕익반연 기유시호
어떤 이가 이러한 꽃을 뿌린다면 한없는 복을 받는다. 그러나 ‘여래께서는 제자나 중생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꽃이나 초목을 꺾어서 공양하게 했다’고 말한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계행을 지키는 이는 천지의 삼라만상을 해칠 수가 없고, 설령 실수로 해치는 것도 큰 죄를 받는데, 어찌 청정한 계를 무너뜨리고 만물을 손상시키면서까지 복을 구하겠는가. 이는 이익을 바라다가 도리어 손해가 되니 어찌 옳다 하겠는가.
달마 관심론(觀心論) 10
근기 둔한 사람 밖으로 과보 구해 밤낮 분주하게 세간의 탑 돈다
又長明燈者 正覺心也 覺知明了 우장명등자 정각심야 각지명료
喩之爲燈 是故一切求解脫者 유지위등 시고일체구해탈자
常以身爲燈臺 心爲燈盞 信爲燈炷 상이신위등대 심위등잔 신위등주
增諸戒行 以爲添油 智慧明達 증제계행 이위첨유 지혜명달
喩如燈光 常燃如是覺燈 유여등광 상연여시각등
炤破一切無明癡暗 能以此法 소파일체무명치암 능이차법
轉明開悟 卽是一燈 燃百千燈 전명개오 즉시일등 연백천등
以燈續明 終無盡故 故號長明 이등속명 종무진고 고호장명
過去有佛 名曰燃燈 義亦如是 과거유불 명왈연등 의역여시
또 장명등이란 바르게 깨친 마음을 뜻한다. 깨달은 지혜의 명료함을 등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해탈을 구하는 사람은 몸으로 등대(燈臺)를 삼고, 마음으로 등잔을 삼고, 믿음으로 심지를 삼고, 계행을 기름으로 삼으면 지혜의 밝기가 마치 등불 같을 것이다. 항상 이러한 깨달음의 등으로 모든 무명과 어리석음을 비추어야 하며, 이러한 법으로 밝은 깨달음을 열어나가야 한다. 즉 하나의 등불로 백천 개의 등불을 밝히고 이 등불의 밝음이 끝없이 이어지므로 장명등이라 한다. 과거세상에 연등불이 계셨다는 것도 역시 이러한 뜻이다.
愚癡衆生 不會如來方便之說 우치중생 불회여래방편지설
專行虛妄 執着有爲 전행허망 집착유위
遂燃世間蘇油之燈 以炤空室 수연세간소유지등 이소공실
乃稱依敎 豈不謬乎 내칭의교 기불류호
所以者何 佛放眉間一毫之光 소이자하 불방미간일호지광
尙照十萬八千世界 상조십만팔천세계
若身光盡現卽普照十方 약신광진현즉보조시방
豈假如是世俗之燈 기가여시세속지등
以爲利益 審察斯理 應不然乎 이위이익 심찰사리 응불연호
어리석은 중생이 여래의 방편의 말씀을 알지 못하여 허망한 짓을 하고, 유위법(有爲法)에 집착하여 세간의 소유(蘇油)로 등을 켜서 빈 방을 비추는 것으로써 가르침 대로 한다고 하니, 어찌 잘못됨이 아니겠는가. 그 까닭이 무엇인가.
부처님의 미간(眉間)에 있는 백호광(白毫光)으로도 십만팔천의 세계를 비추고, 신광(身光)을 다 나타내면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게 되는데, 어찌 이런 세속의 등을 빌려서 이익을 삼겠는가. 이런 이치를 깊이 살펴보면 응당 그렇지 않겠는가.
又六時行道者 所謂六根之中 우육시행도자 소위육근지중
於一切時 常行佛道 佛者覺也 어일체시 상행불도 불자각야
卽時修諸覺行 調伏六根 六情淸淨 즉시수제각행 조복육근 육정청정
長時不捨 名爲六時行道 장시불사 명위육시행도
塔者身心也 常令覺慧 巡 身心 탑자신심야 상령각혜 순요신심
念念不停 名爲 塔 過去諸聖 염념부정 명위요탑 과거제성
曾行此道 得涅槃樂 今時世人 회행차도 득열반락 금시세인
求解脫者 不會斯理 何名行道 구해탈자 불회사리 하명행도
竊見今時鈍根之輩 曾不內行 절견금시둔근지배 증불내행
唯執外求 世間塔 日夜走驟 유집외구 요세간탑 일야주취
徒自疲勞而眞性一無利益 도자피로이진성일무이익
迷愚之輩 甚誠可愍歟 미우지배 심성가민여
또 여섯 차례 행도(六時行道)한다는 것은 항상 육근(六根)의 활동이 불도를 행한다는 뜻이다. 부처란 깨침이다. 즉시 모든 각행을 닦아 육근을 조복시키고 육정(六情)의 청정함을 오랜동안 버리지 않는 것, 이를 육시행도라 한다. 탑이란 몸과 마음을 상징한다. 밝은 지혜로 몸과 마음이 돌며 생각생각이 끊이지 않는 것을 탑돌이라 한다. 과거 성현들도 이 도를 행하여 열반락을 얻었는데 지금 해탈을 구하는 사람이 이런 이치를 모르니 어찌 행도한다 하겠는가. 근기가 둔한 사람을 보면 안으로 닦지 않고 밖으로 과보만 구하면서 밤낮 분주하게 세간의 탑을 돈다. 이는 피로하기만 하고 진성(眞性)에는 아무 이익이 없으니 어리석은 무리여 참으로 가엾다.
달마 관심론(觀心論) 11
모든 계행 법답게 지켜 보호하고 반드시 삼독끊어 몸과 마음 청정
又持齋者 當須會意 不達其理 우지재자 당수회의 부달기리
徒施虛功 齋者齊也 所謂勤治身心 도시허공 재자제야 소위근치신심
不令散亂 持者護也 所謂於諸 불령산란 지자획야 소위어제
戒行 如法護持 必須禁六情 制三毒 계행 여법호지 필수금육정 제삼독
勤修覺察 淸淨身心 了如是義 근수각찰 청정신심 요여시의
可名爲齋 又持齋者 食有五種 가명위재 우지재자 식유오종
一者法喜食 所謂依如來正法 일자법희식 소위의여래정법
歡喜奉行 二者禪悅食 환희봉행 이자선열식
所謂內外澄寂 身心悅樂 소위내외징적 신심열락
三者念食 所謂常念諸佛 삼자염식 소위상념제불
心口相應 四者願食 심구상응 사자원식
所謂行住坐臥 常行善願 소위행주좌와 상행선원
五者解脫食 所謂心常淸淨 오자해탈식 소위심상청정
不染世塵 持五淨食者 名爲齋食 불염세진 지오정식자 명위재자
若復有人 不食如是五種淨食 약부유인 불식여시오종정식
自言持齋 無有是處 자언지재 무유시처
또 지재(持齋)라 하는 것도 그 뜻을 잘 알아야 한다. 이치를 모르면 공력만 허비한다. 재(齋)란 가지런하게 한다는 뜻이다. 즉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닦아서 산란하지 않게 하는 것이고, 지(持)는 보호한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모든 계행을 법답게 지켜 보호하되 반드시 육정(六情)을 금하고 삼독을 끊으며, 부지런히 깨닫고 살피는 수행을 하여 몸과 마음이 청정해지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뜻을 알아야 재계(齋戒)를 지킨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재계를 지키고 보호하는 데에는 다섯 종류의 식사가 있다. 첫째는 법희식(法喜食)인데, 여래의 바른 법을 믿고 기쁘게 받들어 행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선열식(禪悅食)인데, 안과 밖이 맑고 고요하여 몸과 마음이 늘 즐거움을 말한다. 셋째는 염식(念食)인데, 늘 부처님을 생각하되 마음과 입이 한결같음을 말한다. 넷째는 원식(願食)인데, 다니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간에 늘 바른 원을 행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해탈식(解脫食)인데, 마음이 항상 청정해서 세상 번뇌에 물들지 않음을 말한다. 그래서 이 다섯 가지 깨끗함을 보호하고 먹는 것을 재식이라 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런 다섯 종류의 깨끗한 음식을 먹지 않고 재계(齋戒)를 지키며 보호한다 한다면 전혀 옳지 않은 말이다.
又言斷食者 斷無明惡業之食 우언단식자 단무명악업지식
世有迷愚 不悟斯理 身心放逸 세유미우 불오사리 신심방일
造諸惡業 貪恣欲情 不生慙愧 조제악업 탐자욕정 불생참괴
唯斷外食 自爲持齋 何異癡兒 유단외식 자위지재 하이치아
見爛壞死屍 稱名有命 必無是處 견란괴사시 칭명유명 필무시처
又禮拜者 常如法也 必須理體內明 우예배자 상여법야 필수리체내명
事相外變 理不可捨 事有行藏 사상외변 이불가사 사유행장
會如是義 乃名依法 夫禮者敬也 회여시의 내명의법 부예자경야
拜者伏也 所謂恭敬眞性 배자복야 소위공경진성
屈伏無明 名爲禮拜 굴복무명 명위예배
또 단식(斷食)이란 무명과 악업의 음식을 끊는 것을 말한다.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은 이런 이치를 모르고 몸과 마음을 멋대로 행동하여 악업을 짓고 정욕에 이끌려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서 단지 입으로 먹는 음식만을 끊고는 재계를 지키고 보호한다 하니, 이는 철없는 아이가 썩은 시신을 보고 산 사람이라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전혀 옳지 않다. 또 예배라 하는 것은 법답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 안으로 밝은 것이 이치의 본질이고, 밖에서 변하는 것이 일의 모습이다. 이치는 버릴 수가 없으나 일이란 나가서 행할 때도 있고 물러나 숨는 때도 있다. 이런 뜻을 이해한다면 법에 의지한다고 할 수 있다. 대체로 예(禮)라는 것은 공경하는 뜻이며, 배(拜)라는 것은 굴복한다는 뜻이니, 진성(眞性)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을 예배라고 하는 것이다.
달마 관심론(觀心論) 12
겉의 예배 통해 마음 밝아짐은 성품과 겉모습 서로 같기 때문
以恭敬故 不敢毁傷 以屈伏故 이공경고 불감훼상 이굴복고
無令縱逸 若能惡情永滅 善念恒存 무령종일 약능악정영멸 선념항존
雖不現相 常爲禮拜 其相者則身相也 수불현상 상위예배 기상자즉신상야
欲爲令諸世俗 表謙下心 욕위령제세속 표겸하심
故須屈伏外身 現恭敬相 고수굴복외신 현공경상
用之則現 捨之則藏 용지즉현 사지즉장
擧外明內 性相應也 거외명내 성상응야
若復不行理法 有執外相 약부불행이법 유집외상
內則迷故 縱於貪嗔癡 내즉미고 종어탐진치
常爲惡業 外則空顯身相 상위악업 외즉공현신상
何名禮拜 欺賢 聖 必不免於輪廻 하명예배 기현광성 필불면어윤회
공경하므로 헐뜯지 않고, 굴복하므로 방종함이 없다. 만약 악한 감정이 영 사라지고 착한 생각이 항상 존속된다면 비록 겉모습으로 나타내지 않아도 항상 예배하는 것이 된다. 모습(相)이란 육신의 행위다. 세속적인 법을 따라 마음을 낮춰 겸손함을 나타내고자 하기 때문에 겉모습을 굴복시켜 공경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 씀에 따라 드러나기도 하고 감춰지기도 하는 것이니, 겉의 예배를 통하여 마음이 밝아지는 것은 성품과 겉모습이 서로 같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이법(理法)을 행하지 않고 겉모습의 예배만을 집착하고 마음대로 탐·진·치에 놀아나며 악업을 짓는다면 이는 겉으로 거짓 흉내만 것이니 어찌 예배라 하겠는가. 성인과 현인을 기만하는 짓이니 반드시 윤회를 면치 못할 것이다.”
又問曰 溫室經 云洗浴衆僧 우문왈 온실경 운세욕중승
得福無量 若有觀心 可相應不 득복무량 약유관심 가상응부
答曰洗浴衆僧者 非說世間有爲之事也 답왈세욕중승자 비설세간유위지사야
此假諸事 譬喩眞宗 隱說七事 차가사자 비유진종 은설칠사
其七事者 一者淨水 二者燃火 기칠사자 일자정수 이자연화
三者 豆 四者楊枝 五者淨灰 삼자조두 사자양지 오자정회
六者 膏 七者內衣 用此七法 육자소고 칠자내의 용차칠법
沐浴莊嚴 能除三毒無明垢穢 목욕장엄 능제삼독무명구예
물었다. “<온실경>에 보면 ‘여러 스님을 목욕시켜주면 한없는 복을 받는다’ 하였는데 오직 관심(觀心)만 해도 마찬가집니까.”대답했다. “스님들을 목욕시킨다 하는 것은 세간의 유위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세상의 일을 빌려서 참진리를 비유한 것이며, 일곱 가지 일을 견주어서 말한 것이다. 그 일곱 가지는 첫째 맑은 물이고, 둘째 불을 피우는 것이고, 셋째는 조두( 豆)요, 넷째는 양지(楊枝)요, 다섯째는 깨끗한 재(灰)요, 여섯 째는 우유 기름이며, 일곱 째는 속옷이다. 이 일곱 가지의 법을 사용하여 목욕하고 장엄하면 삼독과 무명의 때를 제거할 수 있다.
其七法者 一者法戒 洗溫愆非 기칠법자 일자법계 세온건비
猶如淨水 去諸塵垢 二者智慧 유여정수 거제진구 이자지혜
觀察內外 猶如燃火 能溫淨水 관찰내의 유여연화 능온정수
三者分別 揀棄諸惡 猶如 豆 삼자분별 간기제악 유여조기
能淨垢 四者眞實 斷諸妄語 능정구이 사자진실 단제망어
猶如楊枝 能消口氣 유여양지 능소구기
일곱 가지 법이란 첫째는 법과 계율이다. 잘못된 허물을 따뜻한 물에 씻기를 마치 맑은 물이 더러운 때를 씻듯이 함이다. 둘째는 지혜이니, 내외를 관찰하기를 마치 타는 불이 맑은 물을 더웁게 하듯이 함이다. 셋째는 분별이니, 악을 골라 버리기를 마치 콩을 씻어 깨끗하게 하는 것과 같음이다. 넷째는 진실이니, 온갖 거짓말을 끊는 것이 마치 양치질하여 입 냄새를 없애듯 함이다.
달마 관심론(觀心論) 13
말로 인해 뜻을 얻지만 뜻 얻고나면 말은 잊어버리라
因筌求魚 得魚忘筌 인전구어 득어망전
因言得意 得意忘言 인언득의 득의망언
旣稱念佛之名 기칭염불지명
須行念佛之體 수행염불지체
若念無實體 口誦空名 약염무실체 구송공명
徒自虛功 有何成益 도자허공 유하성익
且如誦之與念 名義縣殊 차여송지여염 명의현수
在口曰誦 在心曰念 재구왈송 재심왈염
故知念從心起 고지염종심기
名爲覺行之門 위각행지문
誦在口中 송재구중
卽是音聲之相 즉시음성지상
執相求福 終無是乎 집상구복 종무시호
통발로 인해 고기를 잡되 고기를 잡고나면 통발은 잊어버린다. 말로 인해 뜻을 얻지만 뜻을 얻고나면 말은 잊어버린다. 그러므로 이미 염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면 염불의 실체를 행해야 한다. 만약 생각에 실체가 없이 입으로 헛되이 명호만을 왼다면 공력만 허비할뿐 이익이 없다. 또 외우는 것과 염(念)하는 것은 이름과 뜻이 매우 다르다. 입으로 하면 외운다 하고, 마음으로 하면 염한다 한다. 그러므로 염하는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므로 깨치는 수행의 문이라 하고, 외우는 것은 입에 속하며 음성의 모습이니, 형상에 집착해서 복을 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故經云 고경운
凡所有相 皆是虛妄 범소유상 개시허망
又云若以色見我 우운약이색견아
以音聲求我 이음성구아
是人行邪道 시인행사도
不能見如來 불능견여래
以此觀之 이차관지
乃知事相 非眞正也 내지사상 비진정야
故知過去諸聖 고지과거제성
所修功德 皆非外說 소수공덕 개비외설
唯只論心 心是衆聖之源 유지논심 심시중성지원
心爲萬惡之主 심위만악지주
無上眞樂 自由心生 무상진락 자유심주
三界輪廻 亦從心起 삼계윤회 역종심기
心爲出世之門戶 심위출세지문호
心是解脫之關津 심시해탈지관진
知門戶者 豈慮難成 지문호자 기려난성
識關津者 何憂不達 식관진자 하우부달
그러므로 경에 말하기를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다’하였다. 또 말하기를 ‘만약 모양으로 나를 보려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니, 끝내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했으니, 이로써 본다면 형상은 진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과거의 여러 성현들이 닦은 공덕은 다른 말씀을 한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을 논하였을 뿐이다. 마음은 여러 성인들의 근원이고, 마음은 모든 악의 주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더없는 참 즐거움도 마음에서 생기고, 삼계를 윤회하게 됨도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마음은 세간을 벗어나는 문턱이요, 마음은 해탈의 나루터이니, 문턱을 안다면 어찌 이루지 못할 것을 염려하며, 나루터를 안다면 어찌 건너지 못할 것을 근심하겠는가.
달마 관심론(觀心論) 14
어리석은 이 작은 쾌락 탐하며 닥쳐 올 큰 고통 깨닫지 못하니
竊見今時淺識 절견금시천식
唯知立相爲功 유지입상위공
廣費財寶 광비재보
多傷水陸 다상수륙
妄營像塔 망영상탑
虛役人功 허역인공
積木壘泥 적목누니
塗靑畵綵 도청화채
傾心盡力 경심진력
損己迷他 손기타미
未解慙愧 미해참괴
何曾覺悟 하증각오
요즘 천박한 사람들을 보니, 오직 형상을 세우는 것으로 공덕을 삼아 많은 재물을 허비한다. 물과 육지의 중생을 죽여서 불상과 탑을 세우며, 인력을 허비하여 나무와 진흙을 쌓아올려 단청을 하기에 온힘을 다 기울이니, 자기도 손해요 남도 어리석게 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니 어찌 깨달을 수 있겠는가.
見有爲則勤勤愛着 견유위즉근근애착
說無相則兀兀如迷 설무상즉올올여미
且貪世上之小樂 차탐세상지소락
不覺當來之大苦 불각당래지대고
此之修學 차지수학
徒自疲勞背正歸邪 도자피로배정귀사
言獲福 광언획복
但能攝心內照 단능섭심내조
覺觀常明 각관상명
絶三毒心 절삼독심
永使消亡 영사소무
閉六賊門 폐육적문
不令侵擾 불령침요
恒沙功德 항사공덕
種種莊嚴 종종장엄
無量法門 무량법문
一一成就 일일성취
超凡證聖 초범증성
目擊非遙 목격비요
悟在須臾何煩皓首 오재수유하번호수
眞門幽秘 진문유비
寧可具陣 영가구진
略說觀心 약설관심
詳其小分 상기소분
유위법(有爲法)을 보면 부지런히 애착을 일으키고 무위법(無爲法)을 말해주면 바보처럼 멍청해진다. 세상의 조그마한 쾌락을 탐하다가 닥쳐올 큰 고통을 깨닫지 못하니 이런 공부는 스스로 피로할 뿐이다. 이는 불법의 바른 이치를 등지고 삿된 길로 가는 것이니, 복을 받는다는 것은 속이는 말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잘 거두고 안을 비추어 항상 밝게 관찰하여 삼독심을 영원히 녹여없애고, 육적의 문을 닫아서 다시는 침범 못하게 하면 한없는 공덕과 갖가지의 장엄과 무량한 법문을 성취할 것이다. 범부를 초월하여 성현의 지위에 오르는 것은 눈깜짝할 사이다. 깨달음은 일순간인데 어찌 번거롭게 머리가 희도록 기다리겠는가. 참된 법문은 깊고 비밀하니 어찌 다 말하겠는가. 이에 간략하나마 관심법에 대해 조금 밝혔을 뿐이다.”
김원각<시인·역경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