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 왈,
독일철학의 전형적이고 논리적인 사유 방식을 가진 사람과 선불교와 궁도를 결합시킨 활의 명인이 만나면서 벌어진 굴곡진 배움의 이야기는 곧 문화적 만남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문화간의 만남에서 벌어진 이해와 오해 불신과 신뢰 분열과 종합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첨예화되고 있는 다문화적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 책에서 많은 시사점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문화 간의 만남과 소통에 관한 생생한 자료를 제공한다 그러나 두 개의 극단적으로 이질적인 문화를 매개시켜 준 하나의 중요한 모티브가 이 책에는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초월성이다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나 또 공을 넘겨 득점을 하는 것 자체는 어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 동작이 얼마나 간결하고 자연스러우며 나의 몸과 라켓과 공이 얼마나 서로 조화를 이루었는가가 중요하다
" 힘을 빼세요 치지 않는 듯이 치세요'! 더 기다리세요!
신기하게요 스승 아와겐조가 했던 말과 똑같다
끊임없이 연습을 하면 어느 순간 머리보다 몸이 알아서 먼저 움직이게 돼요!
-몸이 알아서 먼저 움직인다는 것은 나의 움직임의 주체가 나의 의식이 아니라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때 나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헤리겔이 발사의 주체라고 말한 '그것'과 다른 것일까? 물론 양자를 똑같은 차원에 놓을 수는 없겠지만 거기에는 분명히 유사성이 있다
탁구선수 현정화의 인터뷰 말, "상대방을 보지 않고 공만 보고 뛰다 보면 어느 순간 나와 라켓과 공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 옵니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나는 마음에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선'에서 이야기하는 물아일체와 주객통일의 순간은 어쩌면 그렇게 아득히 멀리 있는 것이 아님에 틀림없다
활쏘기 자세
활쏘기는 근육을 단련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명심하십시오. 활시위를 당기기 위해서 온몸의 힘을 쏟아서는 안 됩니다. 단지 두 손만을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 팔과 어깨의 근육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마치 활쏘기와 무관한 듯이 보여야 합니다 이것을 배우면 비로소 ' 활 당기기와 쏘기가 정신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 중 하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말을 마치고 그는 나의 두 손을 잡고 천천히 올바른 동작의 과정을 따라하게 해주었다. 그것은 내가 느낌으로 그 동작을 익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첫 시도에서부터 이미 나는 중간 정도의 연습용 활을 당기기 위해서도 인간힘을, 다시 말해 온몸의 힘을 다 쏟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더구나 일본 활은 유럽의 스포츠 활처럼 몸을 밀어 넣어 힘을 주기 쉽도록 어깨 높이로 잡는 것이 아니라 화살을 재고나서 곧바로 팔을 곧게 편채로 높이 들어 궁사의 손이 머리 위에 오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두 손을 오른쪽과 왼쪽으로 똑같은 힘으로 잡아당기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서로 점점 더 멀어질수록 두 손은 곡선을 그리면서 밑으로 내려온다 마침내 활을 쥔 왼손이 팔을 곧게 편 상태에서 눈 높이에 이르고 시위를 쥔 오른손은 팔이 굽혀진 상태에서 오른쪽 어깨 관절 위에 이른다. 이제 사수는 화살을 쏘기 전에 같은 자세로 잠시 동안 가만히 있어야 한다. 활을 팽팽히 당기고 가만히 있기 위해서는 엄청난 힘이 필요했다. 내 손은 금세 떨리기 시작했고 호흡은 점점 가빠졌다. 이것은 그 다음 주에도 마찬가지였다.
" 그게 안되는 이유는 숨을 바르게 쉬지 않기 때문입니다. 숨을 들어마신 뒤 가만히 호흡을 눌러서 배를 약간 팽팽하게 하고 잠시 그대로 계십시오 그러고 나서 가급적 천천히 그리고 고르게 숨을 내쉬고 잠시 멈춘 후 다시 빠르게 공기를 들이마시십시오 내쉬고 들이쉼을 계속하는데 그 리듬은 차차 저절로 정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호흡을 올바로 하면 활쏘기가 날이 갈수록 쉬워짐을 느낄 것입니다 호흡을 통해서 모든 정신적 힘의 우너천을 발견할 뿐 아니라 긴장을 풀수록 이 샘물이 점점 더 풍부하게 흐르면서 더 가볍게 당신의 사지로 흘러드는 상태로 이를 것입니다. "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자신의 강한 활을 당기더니 뒤로 와서 팔의 근육을 만져 보라고 했다. 선생님의 팔은 정말로 아무 힘도 쓸 필요가 없다는 듯이 전혀 힘이 들어있지 않았다. 새로운 호흡법을 활과 화살없이 오래 연습한 끝에 마침내 익숙하게 할 수 있었다. 처음에 느꼈던 머리가 약간 혼미해지는 증상은 곧 사라졌다. 선생님은 숨을 내쉴 때 숨이 가급적 느리면서 고르게 흘러나오다가 마침내 멈추게 되는 과정을 매우 중요시했으며 그래서 내쉬기를 음 하는 콧소리와 함께 하도록 했다. 그것은 연습과 감독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숨결과 함께 소리도 멈추었을 때 비로서 다시 공기를 마시도록 했다. 들숨은 매고 묶으며 들이마신 숨을 간직함에서 모든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날숨은 모든 제한을 넘어섬으로써 묶인 것을 풀고 또 완성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당시에 우리는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어서 호흡법을 활쏘기와 연관시키는 단계로 넘어갔다. 활을 당기고 쏘는 모든 과정은 다음의 여러 단계로 나뉘었다. 즉 활을 잡고 화살을 재고 활을 높이 들고 활을 당기고 최대로 당긴 상태에서 잠시 멈추고 쏘는 것이다. 각 단계는 들숨으로 시작되어 숨을 눌러 멈춘 상태에서 지속되고 날숨과 함게 마감된다. 이 과정에서 호흡은 스스로 제자리를 찾았고 가각의 자세와 동작들에 명확한 강세를 주었을 뿐만아니라 그것들을 리드미컬한 과정으로 엮어주었다. 그래서 부분들로 나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과정은 철저히 완결된 살아 있는 무엇처럼 느껴졌다. 전체의 의미와 성격을 손상시키지 않고도 부분을 마음대로 덧붙이고 떼어낼 수 있는 것이 통상적인 운동 연습과는 전혀 달랐다. 언제나 그 시절을 떠올릴 때면 올라로 숨을 쉬는 것이 처음에는 얼마나 어렵게 느껴졌던지 다시금 절감하곤 한다. 비록 기술적으로는 올바로 호흡을 했지만 활을 당길때 팔과 어깨 근육에 힘을 빼야 한다는 데 주의를 기울이면 나도 모르게 다리 근육이 격렬하게 경직되었다. 마치 두 발로 버티고 견고하게 서 있는 데에 내 모습이 걸렸다는 듯이 그리고 마치 가이아의 아들인 안타이오스처럼 모든 힘을 대지에서 빨아들여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면 선생님이 얼른 알려와서 다리 근육의 특히 예민한 부분을 아프게 지압하곤 했다. 그러던 중 한 번은 죄송스런 마음에 나름대로는 힘을 빼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노라고 말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 당신은 애를 쓴다는 사실, 그에 대해 생각을 한다는 사실이 바로 문제입니다. 다른 일은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 오직 숨 쉬기에만 정신을 집중하십시오! "
선생님이 요구하는 것을 달성하기까지 또 다시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나는 결국 달성했다. 무념무상으로 숨 쉬기를 빠져드는 것을 배웠고 때때로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숨 쉬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기상천외한 발상에 저항해서 몇 시간이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나 선생님이 약속했던 것이 숨 쉬기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었다. 시간이 갈 수록 점점 더 자주, 몸 전체의 힘을 완전히 뺀 상태에서 활을 당기고 또 쏘기까지 그 자세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아직까지는 성공한 횟수가 몇 번 되지 않았고 대부분 실패하고 말았다. 다만 그 질적인 차이는 너무나 명확해서 마침내 나는 정신적으로 활을 당긴다는 말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이해한다고 기꺼이 인정했다.
그러니까 문제는 내가 헛되이 캐내려고 했던 기술적인 요령이 아니라 나를 자유롭게 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준 호흡법에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경우는 아주 비범한 경험과 관련되기 때문에 그 강한 영향력에 굴복하고 자기기만에 빠져 그 경험의 중요성을 과장하려는 유혹이 얼마나 큰지를 나는 잘 알고 있다. 모든 세심한 의심과 냉철한 자제를 동원했으나 그럼에도 새로운 숨쉬기를 통해서 달성된 결과는 너무도 명확한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윽고 선생님의 강한 활조차도 힘을 빼고 당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고마치야 선생과 이 일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나는 왜 선생님께서 그렇게 오랫동안 내가 활을 '정신적으로' 당기려고 헛되이 애쓰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수수방관했는지를 물었다. 다시 말해 왜 처음부터 올바른 호흡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는지를 물었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 위대한 명인은 동시에 위대한 스승입니다. 우리에게 이 두가지가 한데 속한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만약 수업을 호흡법에서 시작했다면 아마도 호흡에 결정적인 것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납득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신은 먼저 스스로의 거듭된 시도를 통해서
좌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 후에야 비로소 던져주는 구명 튜브를 움켜쥘 준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선생님께서는
당신과 모든 제자들에 대해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이것은 정말입니다 그는 제자들의 영혼에서 우리들이 인정하고 싶어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읽고 계시지요.
활을 쏜지 1년후
일 년 뒤에야 마침내 활을 '정신적으로' 말하자면 강력하게 그러나 힘을 쓰지 않고 당길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그리 놀라운 성과라고 할 수 없었지만, 나는 만족했다. 왜냐하면 새로운 사실이 이해되었기 때문이다.즉 왜 사람들이 상대가 혼신의 힘을 다해 가해 온 공격을 태연히 아무 힘도 쓰지 않고 유연하게 받아줌으로써 오히려 그 힘을 되돌려 상대를 쓰러뜨리는 체계적인 호신술을 '부드러운 기예'라고 부르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 전 부터 왜 유도의 원형을 피해 가지만 결코 후퇴하는 법이 없는 물에서 찾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노자는 올바른 삶이란 모든 것에 따르면서 모든 것에 스스로를 맞추는 물과 같다는 심오한 말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 처음에 쉽게 터득한 자는 나중에 그만큼 어렵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문하에서는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 나의 시작은 정말 어려웠다. 그러니 내가 아직 남은 과정과 어렴풋이 짐작되는 앞으로의 어려움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질 만하지 않겠는가?
다음 단계는 쏘기였다. 지금까지는 아무 생각없이 쏘면 그만이었다. 말하자면 쏘기는 당분간 논외로 되어 연습의 언저리에만 머물렀다.
화살이 어디로 날아갔는가 하는 것도 아직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화살이 짚으로 만든 둥치에 꽂히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사실 둥치는 겨우 2미터 앞에 높여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명중시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는 더 이상 힘껏 활을 당기고 있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다시 말해 한껏 벌린 팔이 다시 오그라들지 않으려면 활을 놓는 수밖에
없다고 느낄 때 활시위를 놓았다. 활을 당기는 것이 통증을 수반하지는 않았다. 활시위의 압력이 오래 지속되어도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그래서 최대로 당긴 상태에 머무르는 시간이 성급하게 단축되지 않도록 엄지 손가락에 두툼하게 솜을 먹인 가죽 장갑을 꼈기 때문이다
활을 당길 때 엄지는 화살 아래에서 시위를 감아 싸고 검지, 중지. 약지는 그 위를 단단히 덮으며 동시에 화살을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킨다. 그 다음에 이루어지는 발사는 엄지를 둘러싼 손가락들을 풀어 엄지를 자유롭게 해줌을 의미한다.그러면 시위의 강력한 반발력으로 엄지가 순식간에 곧게 펴지고 시위가 울면서 화살이 날아간다. 지금까지 나의 발사는 언제나 강한 움찔거림을 동반했다. 그것은 눈에 보일 정도로 몸 전체를 강하게 흔들었고 당연히 활과 화살에도 영향을 미쳤다. 흔들리는 활과 화살로는 부드럽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정된 발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 당신이 지금까지 배운 것은 모두 발사를 위한 준비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울 뿐만 아니라 특히 어려운 과제 앞에 서 있으며 동시에 활쏘기의 새로운 단계로 들어갑니다."
큰힘이 요구되는 일을 힘쓰지 않고 해내기 바로 거기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동양인들은 특별히 주목하고 또 높이 평가함에 틀림없다. 반면 나에게 그 상황은 부드러운 발사가 명중률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깍지를 열 때 그 결과는 발사 순간의 움찔거림으로 연결됐고 그것은 흔들림을 유ㅜ발했다. 더구나 갑작스레 자유로워진 손의 급작스런 움직임을 완충시키리나 더욱 어려웠다. 선생님은 올바른 발사를 계속해서 시범 보였다. 자도 계속해서 그와 똑같이 해보려고 했지만점점 더 불안정해질 뿐이었다. 마치 다족류 벌레가 어떤 순서로 다리를 움직여야 할지 생각하기 시작한 다음부터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된 것과 같은 상화에 빠진 듯햇다.
해야 할것에 대해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하면 될 지를 궁리하지 마십시오 쏠 때는 쏘는 사람 자신도 모르게 쏘아야만 흔들림이 없습니다. 활시위가 엄지 손가락을 순간적으로 베어버린 듯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오른손을 의도적으로 열어서는 안됩니다.
힘을 빼고 활을 당기는 나의 솜씨에 더 나무랄 데가 없다고 판단되었는지 어느 날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다. 이 말과 함께 그는 활을 집어서 당기고 쏘았다. 그 때서야 나는 선생님의 오른손이 갑자기 열리고 시위를 놓으면서 순간적으로 뒤로 움직였지만,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발사 직전 예각을 이루었던 오른팔은 비록 갑자기 열렸지만 부드럽게 움직이며 펴졌다. 그러면서 불가피한 움찔거림은 탄력적으로 흡수되면서 소거되었다. 튕기어 나가는 활시위의 날카로운 굉음과 화살의 파괴력이 발사의 강도를 드러내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발사의 이면에 그런 큰 힘이 내재되어 있음을 전혀 눈치 챌 수 없었을 것이다. 선생님의 발사는 너무도 단순하고 평범하게 보여서 마치 장난인 듯이 여겨졌다. 큰 힘이 요구되는 일을 힘쓰지 않고 해내기. 바로 거기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동양인들은 특별히 주목하고 또 높이 평가함에 틀림없다. 반면 나에게 그 상황은 부드러운 발사가 " 명중률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당시 내가 도달한 단계에 비추어 볼 때, 그 밖의 다른 생각은 떠올릴 수 없었다.)나는 총기 사격의 경험을 통해 사선에서의 흔들림으로 인한 아주 사소한 벗어남이 명중률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배우고 연습한 모든 것이 나로서는 이런 관점에서만 이해되었다. 힘을 빼고 당기기, 최고로 당긴 상태에서 힘을 빼고 머물기, 힘을 빼고 발사하기,힘을 뺀 채 움찔하는 떨림을 상쇄하기 등 이 모든 것은 활쏘기를 그토록 공력과 인내를 들여 배우는 목적, 즉 명중률을 높이기 위한 기술이 아닌가? 그렇다면 왜 선생님은 지금까지 연습하고 또 익숙해진 활 당기기와 전혀 다른 새로운 과정을 이제부터 다룬다는 듯이 말씀하신 것일까?
이런 의심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열심히 또 성실하게 연습했다. 그러나 모든 노력은 허사였다. 심지어는 이전에 내가 아무 생각없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발사를 하던 때에 더 잘 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은 오른손을 열때 특히 엄지를 누르던 세 손가락을 열 때 힘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발사 순간의 움찔거림으로 연결됐고 그것은 흔들림을 유발했다. 더구나 갑작스레 자유로워진 손의 급작스런 움직임을 완충시키기란 더욱 어려웠다. 선생님은 올바른 발사를 계속해서 시범 보였다. 나도 계속해서 그와 똑같이 해보려고 했지만 점점 더 불안정해질 뿐이었다. 마치 다족류 벌레가 어떤 순서로 다리를 움직여야 할지 생각하기 시작한 다음부터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된 것과 같은 상황에 빠진 듯했다. 이런 거듭된 실패에 대해서 선생님은 분명 나보다 덜 당혹해 하는 눈치였다.일이 이렇게 될 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해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하면 될 지를 궁리하지 마십시오. 쏠 때는 쏘는 사람 자신도 모르게 쏘아야만 흔들림이 없습니다. 활 시위가 엄지 손가락을 순간적으로 베어버린 듯이 되어야합니다.다시 말해 오른손을 의도적으로 열어서는 안됩니다. "
수개개월의 소득없는 연습이 계속 이어졌다. 선생님의 활 쏘는 모습에서 언제나 모범을 찾을 수 있었고 또 올바른 발사의 본질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발사가 되기를 헛되이 기다리다 보면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활의 장력에 굴복하게 되고 내 양손은 천천히 서로 가까워졌다. 당연히 발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숨이 가빠올 정도로 버티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팔과 어깨 근육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비록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서 있었지만 (마치 동상 같다고 선생님은 조롱했다) 사지는 굳어졌고 유연함은 사라져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인지 아니면 선생님의 의도에서인지 우리는 함께 차를 마시게 되었다. 나는 이 고대하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 발사가 제대로 되려면, 손이 열릴 때 움찔거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보아도 항상 실패하고 맙니다. 제가 시위를 최대한 세게 잡고 있으면, 손을 열 때 흔들리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가급적 유연하게 잡으려고 애를 쓰면,
활 시위는 완전히 당겨지기도 전에 정말 의도하지 않았는데 너무 빨리 튕겨 나갑니다. 이 두가지 방식의 실패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데
출구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대답햇다.
" 당겨진 활 시위를 마치 어른이 내민 손가락을 꽉 쥐어 잡는 어리아이처럼 잡아야 합니다. 아이는 손가락을 강하게 감아쥐어서 우리는 그 작은 손에서 어떻게 그런 큰 힘이 나오는지 놀라곤 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손가락을 놓을 때는 아무 미동도 없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 아이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이제 손을 놓고 다른 것을 잡아야지 하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아무 생각도 의도도 없이 아이는 이것에서 저것으로 관심을 돌립니다. 우리는 아이가 사물을 가지고 논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사물이 아이들과 논다는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있습니다. "
" 선생님께서 그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혀 다른 상황에 있지 않습니까? 제가 활을 당기고 있으면, 어느덧 지금 당장 발사하지 않으면 더 이상 당기고 있을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이 옵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숨이 가빠온다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원하든 원치 않든 제 스스로 화살을 발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어려움이 있는지를 아주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왜 발상의 순간을 기다릴 수 없고 왜 발사가 되기 이전에 숨이 가빠지는지 아십니까? 올바른 순간에 올바른 발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자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발사 자체에 온 정신을 쏟지 않고 미리부터 성공이냐 실패이냐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당신이 의도하지 않는 움찔하는 동작을 자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손은 올바른 방식으로 즉 어린아이의 손처럼 열리지 않습니다. 당신의 손이 잘 익은 밤송이 껍질처럼 저절로 벌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
그러나 이러한 해설은 나를 더 혼란스럽게 할 뿐이라고 선생님에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왜냐하면 저는 결국 목표를 맞추기 위해서 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당기고 쏘기는 그런 목적을 위한 수단입니다. 이런 관계를 도저히 도외시할 수가 없습니다. 어린아이는 아직 그것을 모르지만, 저는 그것을 없는 일로 할 수가 없습니다. "
깍지를 열때 미동이 생기는 이유에 대한 답변
당겨진 활시위를 마치 어른이 내민 손가락을 꽉 쥐어 잡는 어린아이처럼 잡아야 합니다. 아이는 손가락을 강하게 감아쥐어서 우리는 그 작은 손에서 어떻게 그런 큰 힘이 나오는지 놀라곤 합니다. 그러데 아이가 손가락을 놓을 때는 아무 미동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이제 손을 놓고 다른 것을 잡아야지 하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아무 생각도 의도도 없이 아이는 이것에서 저것으로 관심을 돌립니다. 우리는 아이가 사물을 가지고 논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사물이 아이들과 논다는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그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이해할 수도 잇을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혀 다른 상황에 있지 않나요? 제가 활을 당기고 있으면 어느덧 지금 당장 발사하지 않으면 더 이상 당기고 있을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이 옵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숨이 가빠온다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원하든 원치 않든 제 스스로 화살을 발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답 : 왜 발사의 순간을 기다릴 수 없고 왜 발사가 되기 이전에 숨이 가빠지는지 아십니까? 올바른 순간에 올바른 발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자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발사 자체에 온 정신에 쏟지 않고 미리부터 성공이냐 실패이냐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당신이 의도하지 않는 움찔하는 동작을 자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손은 올바른 방식으로 즉 어린아이의 손처럼 열리지 않습니다. 당신의 손이 잘 익은 밤송이 껍질처럼 저절로 벌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진정한 기예는 목적도 의도도 없습니다.
목표를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서 화살을 발사하는 법을 배우는데 집착하면 할수록 목표는 맞추기는 더 어렵고 또 발사법은 더 배워지지 않습니다. 당신이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이 방해가 됩니다 당신은 의식적으로 행하지 않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자기 자심으로부처 벗어남아로써 참된 기다림을 배울 수 있다. 단호하게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버려서 오직 의도하지 않는 긴장만이 남도록 해야 합니다.
Q : 그러니까 의도를 가지고 무의도적으로 되라는 말씀입니까?
A : 아직 어떤 학생도 그런 질문을 한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 답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수업에 오실 때는 오시는 길에서부터 마음을 가다듬도록 하십시오. 여기 이 연습장에서 일어날 일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이 세상에서 중요하고 실제적인 것은 오직 하나 활쏘기분이라는 듯이 다른 모든 것은 모른 척하고 흘려 지나치십시오!
* 자기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
작은 부분들로 잘게 나누고 그것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연습하게 했다. 다만 여기서도 단지 짧은 암시만을 해줄 뿐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제자들이 이해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전해오는 구분들을 개념적으로 명확하게 파악하고자 할 필요는 없다. 수백 년에 걸친 실천 속에서 탄생한 이러한 구별이 세심하게 계산된 지식보다 더 심오할지 누가 알겠는가?
자신에서 벗어나는 길의 첫걸음은 이전의 호흡법에서 이미 내딛었다. 그 첫걸음은 활을 올바로 당기기 위해 필수적인 육체의 이완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올바른 발사가 이루어진다면 이제 육체의 이완은 궁극적으로 영혼의 이완으로 나아가야 한다. 단지 정신을 운동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자유롭기 때문에 운동하며 근원적인 운동성 때문에 자유롭다 이 근원적인 운동성은 종종 정신적인 운동성이라는 말에서 이해되곤 하는 것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육체적인 이완과 정신적인 자유 이 두가지 상태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단지 호흡법을 통해서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아의 경지를 통해 모든 종류의 구속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벗어남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 이로써 정신은, 자기 속에 침잠하여 이름 지을 수 없는 근원의 완전한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먼저 감각의 문을 닫으라는 요구는 감각적인 세계를 억지로 애써 외면함으로써 충족되지 않고 오리혀 아무 저항없이 비켜 나가려는 마음의 자세를 통해서 충족된다. 이러한 무위의 태도가 본능적으로 달성되려면 영혼은 내적인 정지 상태를 필요로 하며 이 내적인 정지는 호흡에 집중함르로써 얻어진다. 호흡은 의식적으로 또한 세심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진다. 날숨고 마찬가지로 들숨도 하나하나가 중요하게 생각되고 조심스럽게 수행된다. 그 연습의 결과는 오래지 않아 드러난다. 호흡에 몰입하면 할수록 외부의 자극은 점점 퇴색된다. 외적 자극들은 서로 뒤섞여 몽롱한 소음 속으로 가라앉는데 그 웅웅거리는 소리는 처음에는 어렴풋하게 들리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되고 결국에는 마치 파도소리처럼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강한 자극에 대해서조차 면역이 생기고 또 점점 더 쉽고 빠르게 강한 자극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게 된다. 단지 주의할 점은 섰거나 앉았거나 누웠거나 가급적 몸의 힘을 빼라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호흡에 정신을 집중하면 마치 아무것도 투과하지 못하는 껍질에 둘러싸여 격리된 듯한 느낌이 든다. 이제는 단지 숨을 쉰다는 사실만을 알고 또 느낀다. 이 느낌과 앎에서마저 벗어나는 데 새로운 결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저절로 호흡이 느려지고 점점 더 적은 공기를 소비하면서 마침내 호흡이 점차 엷어지고 단조롭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숨을 쉰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고요한 침점의 상태는 불행히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내부로부터의 방해에 시달리기 쉽기 때문이다. 내부로부터의 방해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마치 무에서 떠오르는 듯 뜻하지 않은 기분, 느낌, 희망, 걱정 그리고 생각 등이 어지럽게 섞여서 떠오르고 그것이 동떨어지고 낯선 것일수록 의식을 집중하는 목적과 무관하면 할수록 더욱 더 집요하게 달려든다. 이 내면의 동요는 마치 정신의 집중이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영역에 도달한 것에 대해 복수라도 하듯 우리를 위협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그 위협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그것은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고요하게 호흡을 하며 머리에 떠오르는 것들과 친구가 되고 또 그것을 평정한 마음으로 관조하기를 배우며 마침내 관조하는 것조차 귀찮아짐으로써 달성된다. 이렇게 해서 점차 우리는 잠들기 직전에 가수상태와 유사한 상태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 상태로 완전히 빠져드는 일은 위험하므로 피해야 한다. 그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정신 집중의 특별한 도약이 필요하다. 그것은 며칠 밤을 꼬박 새운 사람이 그의 모든 감각이 깨어 있어야만 목숨을 유지할 수 있을 때 스스로 가하는 충격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러한 충격을 스스로 가하는 데 한번이라도 성공하면 다음부터는 실수 없이 그것을 반복할 수 있다. 이러한 충격을 스스로 가하는 데 한번이라도 다음부터는 실수 없이 그것을 반복할 수 있다. 이러한 충격을 통해서 정신은 외부에 대해 무관심한 자기 내 약동으로 저절로 이행한다. 자기 내 약동의 상태는 아주 가끔 꿈속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무중력감과 행복감을 점점 더 강화시킨다. 그리고 마음먹은 대로 에너지를 움직이고 단계에 맞추어 긴장을 높이거나 늦출 수 있게 된다. 이 상태는 특정한 것을 생각하고 계획하고 추구하고 희망하고 기대하는 것이 전혀 없는 상태로 아무런 방향도 추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충만한 힘의 집중을 통해서 가능한 것은 물론 불가능한 것도 할 수 있다고 느끼는 상태이다. 이렇게 근본적인 무의도, 무자의 상태를 선생님은 정신적이라고 불렀다. 이 상태는 정신적인 각성으로 충만해 있고 그래서 또한 [진정한 정신의 현존]이라고도 불린다.
정신은 아무런 특정한 장소에 매여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곳에 현존한다. 또한 정신은 이것 또는 저것과 관계하지만 그에 얽매이지 않으며 동시에 근원적인 운동성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에 현존한다. 마치 연못을 채우고 있으나 언제라도 흘러나올 준비가 되어 있는 물과도 같이 정신은 자유롭기 때문에 매순간 고갈되지 않는 힘을 발휘하고 또 비어 있기 때문에 만물에 스스로를 개방한다. 이 상태가 진정 근원적인 상태로서 이는 텅 빈 원으로 상징되고 텅 빈 원은 그 속에 있는 자에게는 모종의 의미로서 다가온다. 모든 구속에서 벗어난 궁사는 어떠한 숨겨진 의도에도 교란되지 않고 오로지 정신의 충만한 현존 속에서 기예를 수련해야 한다. 그러나 그가 자기 자신을 잊고 창조적인 과정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역으로 기예를 수련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자신 속에 침잠한 자가 단순히 본능적으로 대처해서는 안 되는 상황에 대면하고 있다면 그는 먼저 그 상황을 의식으로 가져가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전에 벗어 던졌던 저 모든 관계로 다시 들어서야 할 것이다. 이럴 때 그는 잠에서 깨어나 하루의 일정을 살펴보는 사람에 비유할 수 있지만, 깨달음을 얻어 근원적인 상태에 살면서 거기에 몸을 맡기고 있는 사람에 비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행위 과정의 각 마디가 신의 섭리를 통해서 비로소 그의 손에서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또는 그는 어떤 사건의 약동이 스스로 그 약동하는 운동이 되어버린 사람에게는 얼마나 황홀하게 느껴지는지를, 또한 자신의 행하는 모든 것이 사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행해지는 것임을 결코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의 기예 교육방식
* 새로운 것에 대한 도입 초기의 대대적인 열광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기예들이 본질적인 면에서는 이 새로운 수업 방식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일본의 제자는 세가지를 이미 갖추고 있는데 예의범절, 자기가 선택한 기예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 스승에 대한 무비판적 존경이 그것이다. 예로부터 사제 간의 관계는 근본적인 삶의 유대에 속하기 때문에 스승은 수업의 틀을 훨씬 뛰어넘는 높은 책임을 제자에게 요구하고 있다. 우선 제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스승이 보여주는 시범을 신중하게 모방하는 것뿐이다. 스승은 장황한 설교와 설명을 피하고 단지 간략한 지침들을 제시하는 데 그치며 제자들에게 어떠한 질문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는 덤덤하게 학생들의 실수 섞인 노력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 자립성이나 독창성 등을 바라지 않고 그저 참을성 있게 제자가 성장하고 원숙해지기를 기다린다. 양쪽 모두 서두르지 않는다. 스승은 윽박지르지 않고 제자는 성급하게 발걸음을 놀리지 않는다.
스승은 제자의 내면에 있는 예술적 재능을 일찍 깨우려 하기보다는 무엇보다 전저 제자를 완벽한 기술을 가진 장인으로 만들려고 한다 제자는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을 통해서 이런 의도에 응답한다. 그는 더이상의 욕심이 없는 듯 묵묵히 헌신적으로 순종하는데 여러 해가 지난 후 그 동안 완전하게 익힌 기본 형식들이 더 이상 자신을 억압하지 않고 오히려 자유롭게 한다는 사실을 경헙한다. 제자는 날이 갈수록 머리속에 떠오르는 모든 영감을 기술적으로 손쉽게 실행할 수 있게 되며 또한 세심한 관찰을 통해서 새로운 영감을 떠올릴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붓을 움직이는 손은 정신이 움직이는 바로 그 순간에 이미 마음속에 떠오른 것을 그리고 완성한다. 그래서 제자는 정신가 손, 둘 중 어느 것이 그림을 그린 주체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기술적 능숙함이 정신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활쏘기의 기예에서와 같이 모든 육체적 정신적 힘의 집중이 요구된다. 예를 들면 화가가 제자들 앞에 앉는다. 그는 붓을 검사하고 나서 한쪽에 조심스럽게 놓아두고는 신중하게 먹을 갈고 바닥에 놓여 있는 긴 두루마리 화선지를 똑바로 하고나서 오랫동안 깊은 정신 집중의 상태에 머문다. 마치 돌부처와도 같은 이 상태에서 마침내 빠르고 단호한 손놀림으로 그림을 완성한다. 어떤 수정도 필요치 않고 또 할 수도 없는 이 그림은 제자들에게 하나의 모범으로 제시된다. ~~ 고요한 상태에서 예비 동작을 행하고는 자기 자신을 망각한 채 작업 과정에 몰입한다. 그 시작부터 끝까지의 과정이 스승과 제자에게는 자기 완결된 사건으로 간주되는 듯하다. 이 모든 것은 보는 이에게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강력한 자기 표현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왜 스승은 필수적이긴 하지만 초보적인 수준의 준비 작업을 경험 있는 제자에게 맡기지 않는가? 자신이 직접 먹을 갈면 상상력이 고양되고 꽃다발 끈을 잘라 내던지는 대신에 직접 조심스럽게 풀면 조형의 능력이 향상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무엇때문에 그는 매 수업시간마다 항상 똑같이 엄격하게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반복하며 또 제자들에게 똑같이 따라하게 하는가?
이유는 이러한 준비과정이 창조를 위한 올바른 마음의 틀을 제시해 준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
준비 작업을 할 때의 명상적인 고요함 덕분에 우리는 결정적 의미를 지닌 이완과 자신의 모든 힘의 조화 그리고 정신 집중과 정신의 현존 등을 달성할 수 있다. 이것은 제대로 된 작품을 창조하기 위한 전제 조건들이다 아무 의도도 없이 자신의 행위에 침잠함으로써 머릿속을 맴돌던 작품이 마치 저절로 되는 듯이 완성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위의 예에서 다른 형태로 등장하는 두 가지 예비 작업들은 활쏘기에서 준비 단계들과 자세가 가졌던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와 다른 경우도 있는데 예를 들어 종교적인 무용수와 배우의 경우에는 자기 집중과 침잠의 과정이 무대에 등장하기 전단계에서 이루어진다. 활쏘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기예들도 의식의 문제라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선생님의 백 마디 말씀보다 이러한 의식이 제자에게 다음 사실을 훨씬 더 명료하게 깨닫게 해준다. 즉 예술가의 올바른 정신적 상태는 준비 과정과 제작과정 기술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상황적인 것과 대상적인 것이 물 흐흐듯 서로 교류하는 경우에만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와 함께 제자는 모방의 새로운 주제를 발견한다 자기 망각적인 침잠을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게 하는 정신 집중의 방법이 이제 제자에게 요구된다. 그러면 모방은 약간의 적극적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객관적 내용에 관련되지 않고 이전에 비해 더욱 자유롭고 경쾌하며 정신적으로 된다. 제자는 새로운 가능성과 마주하고 있음을 깨닫지만 동시에 이 가능성의 실현은 적극적 의지와 아무 관계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자의 재능이 고조되는 긴장을 계속 견뎌낼 수 있다고 했을 때 그가 대가로 가는 길목에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위험이 또 하나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공허한 자기 만족에 빠져 버리는 위험이 아니라 (동양인들은 자아 숭배에 빠질 정신적 소질이 전혀없다) 오히려 자신의 예술적 성취에 빠져 버리게 되는 위험이다. 이는 다시 말해 예술가적 실존이 마치 그 자체로 자립적이고 타당한 삶의 형식인 듯이 행동하는 위험성이다. 스승은 그 위험성을 미리 내다보고 있다 그는 주의 깊고 정교한 정신 지도를 통해 제자들이 적시에 방향을 바꾸고 또 스스로를 극복할 수 있도록 개입한다.
그러나 스승은 눈에 띄지 않게 마치 지나가는 말로 하듯이 제자가 이미 겪었을 법한 경험에 기대어서 모든 올바른 창작은 진정한 무아의 상태에서만 달성될 수 있음을 암시할 뿐이다. 그리고 진정한 무아의 상태에서 창작자는 더 이상 그 자신 으로 그곳에 있을 수 없다. 오직 정신만이 그곳에 있으며 또 특수한 방식으로 깨어 있다. 이 깨어 있음은 나 자신의 색조를 띠지 않으며 그 만큼 더 제한 없이 삼라만상을 듣는 눈과 보는 귀로 관통한다. 이렇게 해서 스승은 제자가 스스로 길을 헤쳐 나가도록 한다. 한편 제자는 점점 더 스승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깨달아 가는 데 익숙해진다. 즉 스승이 이미 반복해서 말했지만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의 실상을 이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내적인 작업은 제자가 한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느끼고 또 끊임없이 재발견하는 자아로서 정신을 도야해 가는 가정이라는 데에 그 본질이 있다 이 도야의 과정은 대가의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마감된다. 대가의 경지에 이르면 예술가됨과 인간됨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보다 고차적인 단계에서 만난다 대가의 경지는 광대무변의 진리에 따라서 살고 또 거기에 의지함으로써 근원적 기예를 달성하는 것이 인간적 삶의 형식과 다른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활을 최대로 당기고 무심의 상태에 머무르는 것
질문: 만일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발사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답 : 그것이 발사합니다
질문 : 내가 더 이상 거기에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제가 무아의 상태에서 발사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답 : 그것이 최대로 당긴 상태에서 기다리며 머무릅니다.
질문 :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 또는 무엇입니까?
답 : 당신이 그것을 이해하게 되면 나는 더 이상 당신에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 스스로 경험하는 단계를 생략하고 바로 그 길로 가도록 돕는다면 나는 최악의 스승이며 이 자리에서 쫒겨나야 합니다
그러니 더 이상 이에 대해 논하지 말고 연습을 합시다
나는 더이상 묻지 않았고 수년 동안 집요하게 노력해 온 모든 것이 무의미해졌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마침내 개의치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는 날 어느 때 처럼 활을 발사했는데 선생님이 깊이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며 수업을 중단했다. 그가 '방금 그것이 쏘았습니다'라고 소리쳤을 때 나는 영문을 몰라 그를 말끔히 쳐다보았다 마침내 그의 뜻을 이해했을 때 나는 치솟는 기쁨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렇게 나무랐다.
'지금 나는 칭찬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감격할 이유는 없지요 내가 절을 한 것도 당신에게 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자기도 모른 채 그렇게 쏘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당신은 완전히 자신을 잊고 아무 의도도 없이 최대한 활을 당신 상태에 머물렀습니다 그러자 잘 익은 과일을 떨어지듯 발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연습을 계속하십시오 "
올바른 발사는 외적으로는 (또는 관찰자에게는) 오른손의 급작스런 움직임이 완충되어 몸의 움찔거림이 전혀 일어나지 않다는 사실을 통해서 알려진다. 한편 잘못된 발사 후에는 참았던 숨이 폭발하듯 터져 나와 급히 숨을 들이마시지 않으면 안된다. 이에 반해 올바른 발사 후에는 숨이 부드럽게 흘러나와 서두르지 않고 숨을 들이마실 수 있으며 심장은 균일한 속도로 평온하게 뛰고 정신 집중이 그대로 유지되어 지체없이 다음 발사로 이행할 수 있다.
그리고 내적으로(궁사에게는) 올바른 발사는 마치 이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듯이 느껴진다. 올바른 발사 이후에 궁사는 모든 올바른 행위와 더 중요하게는 모든 올바른 무위를 행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다. 이러한 마음의 상태는 크나큰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이 상태에 도달한 사람은 마치 그것을 가지지 않은 듯이 가져야 한다고 선생님은 엷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흔들림 없는 평상심을 유지해야만 그 상태가 망설임 없이 다시 찾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 화살이 멀리 나가지 못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발사가 정신적으로 완전한 단게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궁사는 중간 강도의 활로도 정신이 결여된 궁사가 가장 강한 활로 쏘는 것보다 더 멀리 쏠 수 있습니다 활의 대가들은 늘 겪는 일이라 잘 아는 사실이지요 그러니 활이 문제가 아니라 활을 쏠 때의 평정심 즉 활력과 깨달음 이런 것들이 중요합니다. 이 정신적 각성의 히을 최대로 분출시키기 위해서는 의식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진정한 춤꾼이 춤을 추듯 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지의 움직임이 단전, 즉 올바른 호흡이 이루어지는 곳으로부터 샘솟게 됩니다 단지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의식이 아닌 순간적인 영감으로부터 의식을 새로 창조하듯이 행하게 됩니다 거기서 춤과 춤꾼은 하나가 됩니다 의식을 춤추듯 수행함으로써 당신의 정신적 각성은 최고의 힘을 얻게 됩니다.
* 선생님이 왜 표적을 겨냥하는 방법에 대해 전혀 설명하시지 않는지를 물어 보았다.
나의 생각으로는 표적과 화살촉 사이에 반드시 어떤 관계가 있음에 틀림없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명중시킬 수 있게 하는 검증된 조중 방법 같은 것이 있지 않겠는가?
물론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당신 스스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백발백중 표적을 맞춘다면 당신은 남에게 과시하는 기교적 사수에 불과합니다 몇 발이 명중했는지 꼼꼼하게 세는 사람에게 표적은 꿰뚫어야 할 불쌍한 종잇장에 불과합니다 활쏘기의 위대한 가르침은 그런 것을 수준 이하의 행위로 간주합니다 활쏘기의 위대한 가르참은 사수 앞에 저만치 떨어져 있는 표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단지 기술적으로는 결코 겨냥할 수 없는 표적에 대해서만 알 뿐입니다 그 표적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부처'라고나 할까요
선생님은 말을 마치고 나서 우리에게 활을 쏠 때 자신의 눈을 잘 보라고 강조했다. 그의 눈은 의식을 수행할 때와 마찬가지로 거의 감겨 있었고 그가 조준을 하고 있다는 인상은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의 말에ㅔ 순종하며 연습했고 겨냥하지 않고 활을 쏘았다. 처음에는 내 화살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우연히 명중해도 기뻐하지 않았는데 단지 우연히 그렇게 되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이렇게 허공에 활을 쏘는 일을 더 이상 계속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생각하려는 유혹에 빠졌다. 그리고 결국 도대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고 고백할 때까지 선생님은 나의 혼란에 대해 마치 전혀 모르는 척 행동했다 "쓸데없는 근심을 하고 있군요" 그는 위로하듯 말했다.
" 제발 명중이라는 말을 머리에서 지워버리세요 백발 백중이 아니라도 명궁이 될 수 있습니다 저기 있는 쵸적에 명중시키는 것은 최고도의 무심, 자기 몰입 또는 뭐라고 이름 붙이든 간에 이런 상태에 대한 외적인 검증에 불과합니다 통달에도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마지막 단계에 도달한 사람만이 비로소 외부에 있는 저 표적도 백발백중 맞출 수 있습니다.
질문 ;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본래적인 내적인 표적이 무엇인지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사수가 겨냥하지 않고도 외적 목표인 표적지를 맞출 수 있는지 또 그렇다면 명중이 어떻게 내면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외적인 검증이 되는지 이러한 상호 관계를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답 : 이 현묘한 연관에 대해 대강이라도 이해할 수 있으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행각하시는 모양인데 그것은 착각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과정은 지성의 접근이 불가능한 영역에 놓여 있습니다 개념으로는 파악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너무 현실적이어서 어쩔 수 없이 적응할 수밖에 없는 상호 관계들이 자연에는 이미 존재합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내가 자주 생각하던 하나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거미가 줄을 칠때 거미는 거미줄에 걸릴 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햇빛 속에서 아무 생각없이 춤추던 파리가 영문도 모른 채 거미줄에 걸립니다 이 두가지 사태를 통해서 춤추고 잇는 것은 그것입니다 이 춤 속에서 내면과 외면은 통일되어 하나입니다 이런 식으로 사수는 외적으로 겨냥하지 않는 채 표적을 맞춥니다. 이렇게 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군요.
질문 : 혹시 이렇게
생각할 수는 없는지요? 선생님께서는 수십 년간에 걸쳐 연습을 해 오신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말하자면 몽유병자의 확실성 같은 것으로 활과 화살을 당기고 놓는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겨냥을 하시지는 않지만 표적을 명중시키고 또 명중시킬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요
답 : 당신이 말한 것이 어느 정도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것을 굳이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비록 의도적으로 표적을 겨냥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표적을 볼 수 있도록 마주 보고 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바라봄은 충분하지 않고 결정적이지도 않으며 또한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표적을 마치 보지 않는 듯이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질문 :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눈을 가리시고도 표적을 맞추실 수 있어야만 합니다 .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 순간 나는 선생님의 눈빛을 살폈고 선생님이 내 말에 상처를 입으신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이윽고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답 : 오늘 저녁에 나를 찾아오십시오!
* 밤에 스승의 활쏘기
너무 어두워서 나는 표적의 윤곽조차 볼 수 없었다. 향의 작은 불꽆이 없었다면 표적이 있는 자리를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을지언정 그 자리를 정확하게 분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활이 쏘아졌다. 그 순간, 선생님은 분명 의식을 춤추었다. 그가 쏜 첫번째 화살이 밝은 사대를 벗어나 깊은 어둠 속으로 날아갔다 화살이 꽂히는 소리를 통해서 표적에 명중했음을 알았다 두번째 화살도 명중했다
내가 표적대의 불을 밝혔을 때 나는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화살이 표적 정 가운데의 거은 점에 꽂혔고 두 번째 화살은 첫번재 화살의 깃을 찢고 더 나아가 대를 약간 쪼개면서 역시 검은 점에 나란히 꽂혀 있었던 것이다.
스승왈 : 당신의 말대로 첫 번째 발사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저 표적대에 익숙해졌으니,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표적이 어디에 있는지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번째 화살,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찌 됐던 이 두 번째 발사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쏘았고 명중시켰습니다 부처께 하듯이 표적 앞에 예를 표합시다.!!
이 두개의 화살로 선생님은 분명히 나도 명중시켰다 밤새 나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더 이상 내 화살에 대해서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 걱정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나의 이런 태도를 더욱 강화시킨 것이 있었다. 선생님은 한 번도 표적을 보지 않고 오직 사수만을 바라보았는데 마치 사수만 바라보면 발사가 명중햇는지 아닌지 가장 정확히 알 수 잇다는 투였다 이에 대해 질문을 했을 때 선생님은 흔쾌히 그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곧 그의 정확한 활 솜씨 못지않게 발사의 판정 역시 정확하다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스스로 행하는 최고의 정신 집중을 통해서 활쏘기의 기계의 정신을 제자에게 전수했다. 오랫동안의 심사숙고를 거친 내 경험을 통해 자신 있게 말하건대 이심 전심의 직접 전수에 대한 이야기는 단지 미사여구가 아니라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현실적 과정이다. 이 무렵 선생님은 역시 직접 전수에 속하는 또 다른 종류의 도움을 주었다. 내가 계속 잘못된 발사를 하면 그는 나의 활을 가지고 직접 발사 시범을 보여 주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활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마치 활이 이전과 다르게 더 유순하고 영특해지는 듯햇다. 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의 나이 많고 경험 많은 제자들은 사실을 당연하게 여겼고 내가 돌다리마저 두드려보며 건너는 사람처럼 질문을 해대는 것을 우아하게 생각했다.
*** 드디어 그것이 활을 쏘다 !
그렇게 새로운 깨달음으로 하루하루 활쏘기에 매진하던 어느날, 말 활을 쏜 순간 선생님이 소리쳤다. "바로 그것입니다! 예를 표하십시오! "
그 때 표적을 바라보았더니(아직 명중에 대한 집착을 떨치지 못한 나는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살은 단지 표적 한 귀퉁이를 스쳤을 뿐이었다.
"올바른 발사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해야 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합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발사에서 지나친 노력을 기울이게 되어 좋은 출발을 망쳐버릴 수 있으니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가끔 여러 개의 발사가 연달아 성공하여 표적을 명중시키기도 했지만 여전히 많은 발사는 실패였다그러나 내가 조금이라도 거기에 신경을 쓰는 듯한 펴정을 하면 선생님은 엄하게 질책했다.
"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요"
" 발사가 잘못 됐다 하더라도 불쾌해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진작부터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또한 발사가 잘됐어도 기뻐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기쁨과 고통 사이를 오가는 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니까 넉넉한 평정심을 통해서 그것을 초월하는 법을 마치 당신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잘 발사하기라도 한 듯 기뻐할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여기서도 당신은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당신은 아직 짐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이 시기의 몇주와 몇 달은 내 생애에서 가장 힘들었던 수업 시간이었다. 거기에 적응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나는 점차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 수업을 통해서 나 자신에의 집착과 감정의 기복에 사로잡히는 충동적 경향이 남김없이 사라진 것이다.
** 그것이 쏜다는 의미
언젠가 한번 특별히 훌륭한 발사를 했을 때 선생님은 이렇게 물었다.
이제 그것이 쏜다는 말, 그것이 명중시킨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시겠습니까?
" 아니요 도대체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가장 단순 명료한 것조차 혼란스럽게 느껴지는군요 제가 활을 당기는 것인지, 아니면 활이 저를 최대의 긴장으로 당기는 것인지 제가 표적을 명중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쵸적이 저를 맞추는 것인지 그것은 육신의 눈으로 보면 정신적이고 정신의 눈으로 보면 육체적인지 또는 둘 다인지 그도 아니면 둘 중 아무 것도 아닌지 활, 화살, 표적 그리고 저 자신, 이 모든 것이 서로 얽혀 있어서 더 이상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분리하려는 욕구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활을 잡고 쏘는 순간 모든 것이 너무도 맑고 명료하며, 그저 우습게 느껴지기....
이 때 나의 말을 끊으며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 방금 마침내 활시위가 당신의 한가운데를 꿰뚫고 지나갔습니다 "
***시험
그렇게 5년 즈음이 흘렀을 때 선생님은 시험을 치를 것을 제안했다.
"기술을 펼쳐 보이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궁사의 정신적 태도에 훨씬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부분에까지 말입니다 특히 관중 때문에 흔들리지 말고 우리만 있을 때처럼 차분하게 의식을 치르기를 기대합니다 "
시험에 대한 언급은 그 때뿐이었다. 뒤이은 몇 주 동안에도 시험 준비 같은 것은 커녕 그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 그리고 몇 발 쏘지도 않고 수업이 끝났다.그 대신 집에서 의식을 차분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올바른 호흡으로 실행하여 깊은 자기 몰입을 행하라는 숙제를 받았다. 우리는 선생님의 말씀대로 연습했다.그리고 곧 활과 화살 없이 의식을 춤추는 데 익숙해지자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몇 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바로 놀랄만큼 정신을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볍게 몸의 힘을 빼서 집중을 쉽게 노력하면 할수록 집중은 더 강해졌다. 그리고 나서 수업 시간에 활과 화살을 잡으면 힘들이지 않고 '정신의 현존' 상태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시험 날이 다가왔다. 우리는 너무도 마음이 평온해서 관중의 존재에도 편정심을 유지했다.우리는 선생님이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관중들에게 양해를 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훌륭하게 시험에 합격했다.
**기예없는 기예
활쏘기가 완성되려면 바로 거기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끼의 뿔과 거북이의 머리카락으로 쏠 수 있는 사람, 즉 활(뿔)과 화살(머리카락)없이 명중시킬 수 있는 사람이 비로소 가장 진정한 의미에서의 명인, "기예없는 기예"의 명인입니다 더 나아가 그는 '기예없는 기예' 자체이며, 또한 명인인 동시에 명인이 아닙니다 이러한 전환가 함께 활쏘기는 운동없는 운동으로서 춤없는 춤으로서 선으로 이행합니다.
* 스승없는 상태에서 활쏘기 -스승과 이별의 순간
한번은 우리가 나중에 고향에 돌아가서 선생님 없이 어떻게 해야 계속 정진할 수 있는지 물었을 때 그는 대답했다.
두 분에게 시험을 보개 한 것으로 이미 글 질문에 대답했습니다 당시은 스승과 제자가 더 이상 둘이 아니라 하나인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니 언제라도 나를 떠날 수 있습니다. 우리 사이에 넓은 바다가 가로놓여 있더라도 당신이 배운 대로 연습할 때는 나도 항상 거기에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또 하루도 빠짐없이 (활과 화살이 없어도)의식을 행하라고, 또는 적어도 올바른 호흡 수행을 하라고 굳이 부탁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런 부착을 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당신이 정신적인 활쏘기를 결코 중단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로는 내게 편지를 쓰지 마시고 때때로 당신이 어떻게 활을 당기는지 볼 수 있도록 사진을 보내주십시오 그것만으로도 내가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알 수 있습니다. 단지 한 가지에 대해서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두 분은 최근 몇 년을 지내면서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활쏘기의 기예가 그렇게 한 것이지요 궁사로서 겪은 자신과의 심오한 대결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아마 그 변화를 못느꼈겠지만 고향에 돌아가 친구와 친지들을 다시 만나면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전처럼 그렇게 사이가 원만하지 않을 것입니다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일 것이고 다른 기준으로 사물을 이해할 것입니다 나 역시 그랬고 이 기예의 정신을 접한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별이 아닌 이별에 대한 선물로 그가 가장 아끼는 활을 나에게 주었다.
" 당신이 이 활을 쏠 때면 명인의 숨결이 깃들어 있음을 느낄 것입니다 이 활을 단지 호기심을 가진 사람 손에는 쥐어주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 활이 더 이상 못 쓰게 된 다음에는 기념품으로 소장하거나 하지 마십시오 한 줌의 재밖에 남지 않도록 태워 없애 버리십시오"
**명인의 경지
검력의 우월성을 자신의 솜씨에 대한 의식적 평가, 싸움의 경험과 전술에 의존시키면 시킬수록그만큼 더 자유자재한 마음의 움직임을 방해하게 된다.
이것은 활쏘기에서 요구되는 것, 가령 겨냥하지 않고 맞추어야 하고 표적과 표적을 맞추려는 의도를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는 요구과 마찬가지로 불합리하게 들리지 않는가? 그러나 다쿠안이 설파한 검도의 명인의 경지는 실전에서 수없이 입증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스승의 임무
스승의 임무는 길 자체를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궁극의 목표를 향한 길이 어떤 것인지를 스스로 찾아 나가도록 하고 또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먼저 그는 제자가 본능적으로 공격을 전혀 예상 밖의 공격까지도 피하도록 훈련을 시키는 데서 시작한다. 예를 들어 옛날 한 제자가 검술을 배우려고 대가를 찾아왔다. 은퇴하여 산 속에 초막을 짓고 살던 대가는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날부터 제자는 땔감으로 쓸 나무를 해 오고 근처 샘에서 물을 길어 왔으며 불을 지피고 밥을 짓고 방과 마당을 청소하느 ㄴ등 스승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했다.그러나 검술은 전혀 배울 수가 없었다 그러자 젊은 제자는 불만에 가득 찼다 그가 산에 온 것은 검술을 배우기 위함이지 늙은이의 종노릇을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느날 용기를 내어 스승에게 검술을 가르쳐 달라고 청했다 스승은 그러자고 했다 그 결과 젊은이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가 이른 새벽에 밥을 짓기 시작하면 갑자기 스승이 뒤에 나타나서 지팡이로 후려쳤다 방바닥에 걸레질을 하고 있을 때도 언제 어는 곳에서 지팡이가 날아올지 몰랐다. 그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고 항상 깨어 있어야 했다. 몇 년이 지나자, 그는 지팡이가 언제 어느 방향에서 날아와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스승은 아직도 충분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느 날 스승이 불 앞에서 나물을 데치고 있을 때였다 제자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커다란 장작가지를 들어 나물을 젓느라 솥을 들여다보고 있는 스승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그러나 스승은 솥뚜껑으로 제자의 장작가지를 막았다. 이 일로 제자는 비로소 검술의 비밀에 눈뜨게 되었다 그 때서야 제자는 처음으로 스승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다 여기서 제자는 새로운 감각, 더 정확히 말하면 모든 감각의 새로운 각성을 획득해야 한다 그래서 마치 미리 예감했다는 듯이 위협적인 공격을 피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이러한 피함의 기예를 터득하면 더 이상 상대의 움직임을 주의깊게 살필 필요가 없다 그 상대가 한 명이든 여러 명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오히려 이제 막 시작되려는 것을 보고 예감하는 순간 그는 이미 본능적으로 이 사건의 결과로부터 몸을 피한다. 마치 보고 느끼고 피하는 것 사이에 종이 한 장 차이도 없다는 듯이 그것이 중요한 점이다 직접적인 전광석화 같은 반응을 위해서는 의식적인 관찰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는 제자는 더 이상 아무런 의식적인 예측도 하지 않게 되었다 이로써 그는 이미 많은 것을 배운 것이다. 다시 말해 제자는 상대를 어떻게 가장 잘 공략할 것인가를 생각하거나 탐색하지 않게 된 것이다. 제자는 상대와 마주하고 있으면서 그것이 생사가 걸린 문제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야 한다 제자는 처음에는 상대의 움직임과 관련된 모든 관찰과 생각을 포기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스승이 요구한 금기를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차츰 자신을 통제해 나간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 정신을 집중할수록 어쩔 수 없이 싸우고 있는 자신을 그러면서도 상대를 주목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자신을 오히려 보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그는 아직 상대를 은밀하게나마 보고 있는 것이다 단지 가상적으로만 상대에게서 벗어났을 뿐이고 그만큼 더 강하게 상대와 결부되어 있다 단지 주의력을 상대로부터 자기로 돌린 것만 가지고는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달성한 것이 없다 제자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정신 지도의 아주 세밀한 기술이 필요하다 제자는 상대를 근본적인 의미에서 무의도적으로 되기를 배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활쏘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연습이 필요하다 소득없이 느껴질 정도의 끈질긴 연습 말이다 이러한 연습으로 일단 목표에 도달하면 달성된 무의도성속에서 의도성의 마지막 찌꺼기까지 사라진다.
이러한 초탈과 무의도성에 도달하면 저절로 앞의 단계에서 달성한 본능적 회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태도가 생각난다 의도된 공격을 간파하는 것과 그것을 피하는 것 사이에 종이 한 장 차이도 없었듯이 이제는 피함과 앞으로 나아감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다 피하는 순간에 이미 일격을 가할 준비를 하며 일부러 의도하기도 전에 벌써 치명적인 일격이 손쓸 겨를 없이 정확하게 이루어진다 마치 칼이 스스로 움직이는 듯하다
활쏘기에서 그것이 겨냥하고 명중시킨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듯이 여기서도 나 대신에 그것이 등장하고 그것이 치열한 노력을 통해 습득한 나의 능력과 솜씨를 사용한다 여기서도 그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도 포착할 수도 없는 단지 이미 경험한 사람에게만 자신을 드러내는 그 무엇에 대한 이름일 뿐이다
다쿠안에 따르면
검도의 완성은 나와 너에 대해 상대와 상대의 칼에 대해 자신의 칼과 그것을 어떻게 쓸지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 심지어는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는 데 있다. " 그러므로 모든 것이 공이다 너 자신, 거머쥔 칼 그리고 칼을 휘두르는 두 팔 모두가 그렇다! 공에 대한 생각마저도 없다 이 절대적인 공으로부터 행위의 가장 놀라운 전개가 생겨난다"
수묵화의 명인의 경지는 기술을 완벽하게 터득한 손이, 정싱이 움직이는 그 순간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그려서 보여준다는 데서 드러난다. 마치 마음과 손 사이에 종이 한 장의 차이 도 없다는 듯이 여기서 그리기는 무의도적인 자동적인 과정으로 된다. 여기서도 화가가 받을 지침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 십년 동안 대나무를 관찰하고 스스로 대나무가 되어라 그리고 모든 것을 잊고 그려라"
검의 명인은 다시 초심자처럼 순진하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상실했던 순진한 용맹함은 마지막에 흔들림 없는 성격으로서 다시 얻어진다 그러나 초심자와 달리 그는 차분하고 조용하며 겸손하다 자기를 과시하고 싶은 욕구는 전혀 없다 초심자와 명인의 단계 사이에는 지칠 줄 모르는 연습의 길고 험난한 세월이 가로놓여 있다 기술적 기량은 선의 영향을 받음으로써 정신적으로 되고 수련생 자신도 매 단계를 내적으로 극복해 나감으로써 점점 더 자유인으로 변화한다 그의 혼이 된 칼은 이제 칼집에서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불가피한 경우에만 그는 칼을 빼낸다 그래서 하찮은 상대, 근육질을 뽐내는 무뢰한과 싸움을 하느니, 차라리 겁쟁이라는 비난을 감수한다 또는 상대에 대한 큰 존경의 마음에서 그 상대에게 명예로운 죽음을 가져다줄 뿐인 결투를 감행하기도 한다. 여기서 사무라이의 관습, 즉 무사도라고 불리는 '기사의 길"을 규정하는 정서가 잘 드러난다 다시말해 검의 명인에게는 명예, 승리, 생명 등 다른 어떤 것보다도 지금까지 그가 경험했고 또 그를 인도했던 ": 진리의 검"이 가장 고귀하다. 검의 명인은 초심자처럼 겁이 없다 그러나 초심자와 달리 날이 갈수록 더 담대해진다 그는 오랜 시간 쉽없는 명상을 통해 삶과 죽음이 근본적으로 하나이며 똑같은 운명의 차원에 속함을 경험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삶에 대한 걱정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다 그는 기꺼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언제나 죽음에 대해 당황하지 않고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이 선의 본질적인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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