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초기 경전 내용 - 만화로 보는 불교 이야기 - 김정빈 글

pia99 2013. 7. 31. 16:42

 

 

초기경전(아함부)

 

너희들이 성스러운 도를 이룰 때에도 전조가 있으니 좋은 벗을 가지는 것이 바로 그 전조이니라

아난다 존자: 세존이시여, 좋은 벗을 갖는다는 것은 성스러운 도의 절반을 성취한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이 어떠합니까?

세존: 그렇지 않으니라 아난다여, 좋은 동료와 함께 있다는 것은 성스러운 도의 전부라고 해야 옳으니라. 왜야하면 나를 생가해 보아라. 너희는 나를 좋은 벗으로 삼음으로써, 늙어야 하고 죽어야 할 몸이었지만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았느냐 이와 같이 좋은 벗을 가까이 함으로써 중생은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아난다여, 좋은 동료와 함게 지내는 것은 이 도의 전부이니라.

 

고와 그 소멸에 관계되지 않는 주제에 대한 부처님의 침묵을 無記라고 한다. 그 주제에 잘못 빠지게 되면 끝없는 형이상학에서 헤매어 번뇌의 소멸을 이루기 어렵기 때문에 부처님은 그런 주제를 다루기를 거절하신 것이다.

 

 

삼법인 : 무상, , 무아

무아에 대한 가르침

비구들이여, 저 강의 물결을 보아라. 저기에 소용돌이가 일고 있지 않느냐. 그러나 잘 살펴보면 소용돌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고 소용돌이의 주체나 본질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지 않느냐? 그와 같이 인간에게도 인간을 움직이는 주체나 본질이 따로이 있는 것이 아니니라.

케마비구의 반막 : 나는 있다.

육체를 나라고 한 것도 아니고 감각이나 의식 따위를 가리켜 나라고 한 것도 아니오. 그것은 예를 들어 연꽃의 향기와도 같은 것이오. 꽃 향기는 분명히 있으면서도 그것은 꽃의 잎에 있는 것도 아니고 꽃술에 있는 것도 아니듯이 우리 또한 몸, 느낌, 생각, 의지, 의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감각은 나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을 떠나서 따로이 나가 있는 것도 아니오. 나는 이 모든 것의 통일체로서 내가 있다고 한 것이라오.

무아는 현존하는 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 몸과 마음을 구성하는 어떤 세포나 요소도 나의 불변하는 주재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깨달은 분들은 사후에 어디로 가나?

세존: 불이 타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에 의해서이냐?

철학자: 땔감에 의해서입니다.

세존 : 그렇다 그런데 땔감이 다 타서 마침내 불이 꺼지게 되었다. , 이제 그 불은 어디로 갔느냐?

철학자: 다만 불이 꺼졌을 뿐 꺼진 불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세존 : 바로 그와 같으니라. 중생은 애욕이라는 땔감이 있으므로 괴로움 가운데 존재하지만 해탈한 이는 땔감이 모두 타 버려서 달밤과 같은 시원함에 이르렀으므로 그를 일러 죽은뒤에 어디로 간다느니 가지 않는다느니 하고 말할 수는 없느니라.

 

세존께서 탁발을 나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돌아오고 있을 때 마라가 여쭈었다.

마라 : 다시 마을로 돌아가 먹을 것을 얻는 게 어떻습니까?

세존: 비록 얻는 게 없을 지라도 보라, 나는 즐거운에 넘쳐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고 소유도 없이 만족과 기쁨을 음식 삼아 살아가노라.

 

세존께서 정치를 하지 않는 이유

마라: 몸소 위대한 왕이 되어 세상을 다스리소서. 그리하여 죽이는 일도 없고 죽는 일도 없으며 정복하거나 정복당하는 일도 없고 슬퍼하거나 슬픔을 당하는 일도 없는 그런 통치를 해 주옵소서. 세존께서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이 있지 않습니까? 세존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산 중의 왕인 히말라야도 황금으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세존: 저 히말라야 산을 황금으로 만들지라도 그리고 그것을 다시 곱절로 만든다 해도 단 한 사람의 욕망도 채울 수 없는 것. 사람들이여, 이렇게 알고 옳게 행할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