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영조 임금은 백성들에게 절제와 검소함을 강조하고 사치를 금하도록 명했다. 뿐만 아니라 영조는 검소함을 몸소 실천했다.
"신하와 백성이 검소한 생활을 하도록 하려면 임금 스스로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평소 입버릇처럼 말하던 영조는 거처하는 대궐의 방문 종이가 뚫어지면 손수 종이조각을 잘라 발랐다. 용상(龍床)은 비단 대신 무명천으로 짓게 했고 버선도 헌데를 기워 신었다.
어느 날 호조판서는 영조가 방석도 깔지 않고 바닥 위에 앉는 것이 송구스러워서 방석 한 개를 만들어 올렸다. 다른 임금 때 같으면 화려한 수를 놓은 비단 천 겉감에 누에고치에서 뽑은 비단 솜을 넣어 만들었겠지만 검소한 영조가 그런 사치스러운 방석을 쓸 리 만무했다. 그것을 잘 아는 호조판서는 무명천에 푸른 물을 들이고 여느 솜을 넣은 방석을 만들었다.
그런데 영조는 그 방석을 사흘 동안 깔고 앉아 본 뒤에 도로 호조판서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방석을 깔고 앉아 보니 몸은 편하오. 그러나 몸이 편하면 자연 게으르게 되기 때문에 방석을 쓰지 않기로 했소. 이번에 호조판서의 호의로 검소한 것은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덕뿐 아니라 부지런한 덕까지 가져온다는 점을 체험했으니 참 고맙소."
영조의 말에 호조판서를 비롯한 모든 신하는 감격했다. 그래서 관리와 백성들에게 검소의 기풍이 널리 실천되었다. 또한 "영조의 방석"은 검소함을 상징하는 기념품으로 백 여 년 동안이나 호조에 보관되었다고 한다.
-작자 미상
출처 : 해와 달 그리고 별
글쓴이 : 해와달 그리고 별 원글보기
메모 : 위정자들, 경차 사용하라고 여러 혜택을 줄 궁리를 짜기 전에 먼저 몸소 경차를 타고 다닌다면 어떨까?
스님네들. 부처님은 채식 육식 가릴것 없이 다 먹었다고 고기 찾지 마지고, 덥다도 에어콘 보시하는 신도 찾지 말고 춥다고 안락한 법당 보시할 것 같은 신도 찾지 말고 부처님이 어떻게 사셨는지 있는 그대로
'종교 사회 정치 재미난 사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강남 모범중학생들이 일베하는 이유 (0) | 2015.03.04 |
---|---|
[스크랩] "세 번째 결혼인데도 남의 눈치 안 봐요" (0) | 2015.02.03 |
[스크랩] 유일한 박사의 유언장 (0) | 2015.01.01 |
[스크랩] 내과마저 기피과 된 현실.. 환자 생명 위협 (0) | 2014.11.07 |
[스크랩] 김연아 선수 국민 메달 모금 (0) | 2014.02.21 |